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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떼죽음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달 16일 전남 해남에서 처음 신고된 H5N6형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전국에 퍼지면서, 살처분된 닭과 오리가 2000만마리를 넘어섰다. 며칠 전엔 2014년의 H5N8형 고병원성 AI까지 다시 나타났다. 역대 최악의 피해다.

AI 확진 판정이 나면, 반경 3㎞ 내의 닭과 오리는 모두 죽인다. 고병원성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으려면 ‘예방적’ 살처분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살처분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2003년부터 작년까지 모두 3873만마리, 한번 확진 때마다 26만마리를 죽였다. 이번에는 하루 평균 60만마리를 도살하고 있다.

가축은 살처분 후 ‘매몰’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매몰이 살처분인 경우도 많다. 포대자루에 닭이나 오리를 몇 마리씩 집어넣고 구덩이에 파묻어버린다. 생매장이다. 2010년 말의 구제역 때는 돼지 300만마리가 대부분 생매장되었다. 생지옥이 따로 없다.

이번 AI 사태를 재앙 수준으로 키운 정부의 방역대책, 특히 ‘골든타임’을 놓친 허술한 초동대응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웃 일본과 비교하면 백번 맞는 말이다. 하지만 엄청난 피해의 근원은 ‘공장식 축산’이다. 대규모 사육이 아니면, 살처분 규모 자체가 이토록 커질 리가 없다. 게다가 축산공장은 AI 바이러스의 온상으로 최적지다. 일단 AI가 들어오면 방사 사육되는 닭들과 달리 밀폐된 축사에서 밀집 사육되는 닭들은 속수무책이다. 그런데도 AI를 막겠다며, 바이러스의 진원지인 축산공장은 그대로 둔 채 멀쩡한 닭들만 엄청나게 죽이는 어처구니없는 일만 반복하고 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6년 12월 22일 (출처: 경향신문DB)

공장식 축산의 근본 문제는 생명을 물건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 마트 진열대 위에 놓인 정갈한 포장육과 계란 같은 상품으로 가축을 접한다. 상품이 되기까지 가축이 겪는 사육 과정, 그들의 일생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무지하다. 그래서인가. 우리는 엄연한 생명체인 가축에 대해 ‘공장’과 ‘살처분’이란 말을 무심히 사용한다. 하지만 공장은 물건을 생산하는 곳이지, 생명을 낳고 기르는 곳이 아니다. 처분하는 것은 물건이지 생명이 아니다.

상품으로 간주되는 가축은 이윤의 극대화에 가장 효율적으로 설계된 공간에서 사육된다. 효율은 학대의 다른 말이다. 극도의 밀집 공간에서 오는 심한 스트레스로 가축들은 매우 공격적으로 변한다. 닭은 ‘깃털쪼기’와 ‘동종포식’, 돼지는 ‘꼬리물기’를 하기 때문에, 태어나면 부리와 꼬리부터 잘리는 고통을 당한다. 가축들은 자신들의 배설물에서 나온 암모니아로 꽉 찬 공기를 마시며 일생을 보내다 폐기된다. 살처분보다 그리 나을 것도 없다. 어느 쪽이든, 참혹한 과정과 결말이다.

공장식 축산은 돈과 이윤에 집착하며 생명을 경시하는 우리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가축은 돈 벌려고, 먹으려고 키우는 ‘것들’이라고 치부해버리지 말자. 동물을 함부로 다루는 사회는 결코 사람도 존중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생명을 생명으로 대하지 않을수록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능력도 잠식된다.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한 동물의 살처분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라면, 끔찍한 상상일지 모르지만 사람과 살처분의 거리는 생각보다 그리 멀지 않을 수도 있다.

성탄절이 눈앞이다. 이래저래 올해는 ‘기쁜 성탄!’ 인사만 건네기는 힘들게 되었다. 2000년 전도 그랬다. 당시의 권력자 헤롯 대왕은 베들레헴 인근 두 살 이하의 사내아기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비명과 통곡소리가 진동했다. 유대인들의 왕으로 태어난 아기 예수를 제거해서라도 자신의 자리를 유지하겠다는, 권력에 눈먼 탐욕이 빚어낸 참극이었다. 오늘 우리는 엄청난 규모의 살처분을 감수하면서도 공장식 축산을 고집한다. 우리도 무엇엔가 눈이 먼 것은 아닐까.

조현철 | 서강대 교수·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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