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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 4차례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김지은씨가 2차 가해를 멈춰줄 것을 호소했다. 김씨는 12일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에 “더 이상 악의적인 거짓 이야기가 유포되지 않게 도와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김씨는 편지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숨죽여 지내고 있다. 신변에 대한 보복도 두렵고, 온라인을 통해 가해지는 무분별한 공격에 노출돼 있다”고 했다. 김씨가 지난 5일 방송에 출연해 “국민들이 저를 조금이라도 지켜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은 성폭행 피해 사실 폭로 이후 감당하기 어려운 2차 피해를 예견했기 때문이다. 김씨의 이런 우려가 현실이 됐다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어떤 식으로 가공되고 유포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여비서 성폭행 의혹을 받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검에 자진출석하고 있다. _우철훈 선임기자

 

 

김씨는 성폭행 피해 사실을 폭로한 이후 인격살해와 다름없는 2차 피해를 당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블로그 등에서는 김씨의 학력·나이·결혼 여부 등 신상정보는 물론 ‘성폭력을 가장한 정치공작’ ‘아버지가 과거 정치활동을 했다’ 등과 같은 터무니없는 루머가 급속도로 번졌다. 법무부 고위 간부의 성추행 사실을 폭로한 서지현 검사도 근거 없는 소문으로 개인의 인격이 무참하게 짓밟히는 2차 피해를 당했다. 오죽하면 서 검사가 검찰진상조사단에 출석해 허위 소문에 대한 수사까지 요청했는가.

서권천 변호사는 지난 7일 정봉주 전 의원에게 성추행당했다는 피해자의 주장을 비꼬면서 “(피해자가) 7년 전 일을 막 나눴던 대화처럼 기억하고 있다. 피해자의 천재성에 감탄한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부산지역 정치인은 성폭행 피해자를 모욕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시당으로부터 제명조치됐다. 성폭력 피해 여성들의 외침을 가로막고, 그들을 불순한 존재로 만들어 고립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2차 가해가 아닐 수 없다. 성폭력 가해자 가족에 대한 과도한 비난과 악성 댓글도 근절돼야 한다. 일부 누리꾼들은 배우 고 조민기씨 등 성폭력 가해자 가족의 신상정보와 사진을 찾아 인터넷에 올리거나 저주 섞인 악담을 퍼붓고 있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는 들불처럼 번져가는 미투 운동을 가로막는 또 다른 폭력이다. 2차 가해는 직접적인 성폭력에 버금가는 범죄 행위와 다를 바 없다. 미투 운동의 성패도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를 막는 데 달려 있다. 성폭력 피해자를 2차 가해로부터 보호하는 집단지성의 촘촘한 그물망을 만들어야 미투 운동을 더욱 확산시킬 수 있다. 피해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2차 가해자를 엄하게 처벌해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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