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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수수 및 횡령 등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6일 석방됐다. 구속된 지 349일 만이다. 이 전 대통령의 항소심을 맡고 있는 서울고법 형사1부는 구속 만기인 4월8일까지 선고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주거 제한 등을 조건으로 보석을 허가했다. 재판부는 “구속 만료 후 석방되면 주거·접촉 제한을 고려할 수 없어 오히려 증거인멸의 염려가 높다”고 설명했다. 법원의 고민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1심에서 중형을 선고받은 피고인이 거액의 돈을 내고 유유히 ‘집으로’ 향하는 광경은 시민적 상식과 법감정에 어긋난다.
이 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항소심이 시작된 이후 증인을 무더기로 신청하는 등 재판을 고의로 지연시키려는 행태를 보여왔다. 당초 항소심을 맡았던 재판부는 이 전 대통령 측 꼼수를 분명히 차단하지 못한 채 4개월을 사실상 허송했다. 지난 2월 법원 정기인사로 재판부가 변경되면서 항소심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새로이 구성된 재판부는 결국 구속 만기 전 선고를 포기하고 이 전 대통령을 풀어주는 쪽을 택했다. 재판부도 형평성과 공정성 논란을 의식한 듯 보증금 10억원 납입, 자택으로 주거지 제한, 배우자·직계혈족·변호인 외 접견·통신 제한 등의 조건을 달기는 했다. 수면무호흡증 같은 건강상태는 보석 사유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법리적으로는 큰 흠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힘없는 시민의 눈에는 ‘유권무죄, 유전무죄’로 비칠 소지가 다분하다.
6일 오후 조건부 석방을 받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동부구치소를 나오고 있다. 권도현 기자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언은 피해자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경우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이 전 대통령처럼 무거운 범죄 혐의를 받는 이들에게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도록 하는 경우에도 해당한다. 보석으로 불구속 상태가 된 이 전 대통령은 재수감을 면하기 위해 어떻게든 선고를 지연시키려 할 가능성이 크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에 휘둘리지 말고 단호하게 중심을 잡아야 한다. 엄정하고 신속하게 재판을 진행해야 한다. 중대 범죄 혐의자의 ‘외출’은 짧으면 짧을수록 정의에 부합한다.
정치권 인사들도 이 전 대통령이 풀려난 것을 기화로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을 거론하는 등 무분별한 주장을 제기해서는 곤란하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페이스북에서 “2년간 장기 구금돼 있는 박 전 대통령의 석방도 기대한다”고 했는데, 가당치도 않다. 국정농단 사건 상고심 재판을 받고 있는 박 전 대통령은 보석을 청구할 수는 있지만, 석방될 가능성은 전무하다. 별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이미 징역 2년이 확정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자제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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