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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이 찾아오면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지고, 부유한 사람들은 더 부유해지는구나. 편의점에서 일하는 정용은 매일 미세먼지 마스크 수량을 체크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약국에선 어떤 종류의 마스크를 파는지 알 수 없었으나, 정용이 근무하는 편의점에선 모두 세 종류의 마스크를 팔았다. 하나는 N사에서 나온 황사·미세먼지 겸용 마스크인데, 포장지에는 ‘대형 3매입’이라고 크게 인쇄되어 있었다. 가격은 3000원. 편의점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마스크라서 늘 넉넉하게 물건을 진열해두어야 했다.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되는 날이면 이른 아침부터 출근하는 사람들이 N사의 마스크를 구입해(약국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았으니 그랬겠지만) 바로 그 자리에서 포장지를 벗기고 착용하는 일이 많았다. 부부가 같이 들어오거나 등교하는 형제자매가 함께 편의점으로 들어오는 경우 거의 다 N사의 마스크를 샀다. 하나씩 나눠 쓰고도 하나가 남으니까. 마스크의 재질은 부직포이고, 뺨과 닿는 양 끝은 에지 라인으로 되어 있었다.

 

 G사에서 나온 미세먼지 차단 필터 마스크는 한 장에 3000원이나 하는데 재질은 면으로 되어 있었다. 안경 쓴 사람들을 위해서인지 코 부분을 약간 볼록 튀어나오게 만든 디자인이 특색이라면 특색이었다. 포장지에 ‘인체공학적 입체 설계’ ‘식약처 허가’ ‘3중 특수 필터’ 같은 요란한 문구가 많이 적혀 있었지만, 편의점에선 가장 적게 팔리는 마스크였다. 실제로 정용은 N사 마스크를 한손에 들고 한참 동안 고민하던 한 회사원이 최종적으론 G사 마스크를 선택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는 마스크를 사자마자 바로 계산대 앞에서 착용했는데, 채 5초도 지나지 않아 안경에 뿌연 김이 서렸다. 그는 그 자세 그대로 가만히 정용을 바라보다가 느릿느릿 편의점 밖으로 나갔다.

가장 미스터리한 마스크는 C사에서 나온 면 황사 마스크였다. 한 장당 3500원의 가격표가 붙은 이 마스크는, 포장지에도 별다른 광고 문구가 적혀 있지 않았다. ‘無 형광물질 4중 차단’이 전부였지만, N사 마스크 다음으로 많이 팔렸다. 정용은 C사 마스크를 산 사람들이 편의점 안에서 바로 착용하는 모습도 여럿 보았는데 눈으로 봐선 딱히 달라 보이는 구석도 없었다. 크기도 N사나 G사 마스크보다 작았고, 재질이 고급스러워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꾸준히 C사 제품을 찾았다. 처음 정용은 그것이 취향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엔 그냥 본능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두려울수록 지갑은 더 빨리 열리는 법이니까.

편의점 알바는 분명 실내 근무이지만, 미세먼지가 자욱하게 낀 날에는 정용 또한 목과 눈이 따갑고 불편해졌다. 편의점 출입문은 빈번하게 열렸고, 그때마다 공기의 밀도가 달라졌다. 미세먼지 주의보가 발령된 날이면 진열대를 두 시간에 한 번씩 면 걸레로 닦았는데, 그때마다 네 장의 면 걸레가 새까맣게 변하곤 했다. 정용은 마스크를 쓴 채(N사 마스크였다) 근무를 하다가 점장에게 지적을 받기도 했다.

“그게 뭐냐?” 고등학교 생물교사를 하다가 은퇴 후 편의점을 차린 점장은 두 시간에 한 번씩 들러 매장을 둘러보고 매출을 점검했는데(그는 편의점 바로 옆 빌라에 살았다), 알바생들을 무슨 미토콘드리아쯤으로 여기는 위인이었다. 눈에는 보이지 않고, 그저 어떤 에너지를 합성하는 데 도움을 주는 미력한 존재.

“목이 좀 아파서요.” 정용은 마스크를 쓴 채 말했다.

“엄살은… 그 모습 보고 사람들이 퍽도 물건 살 마음 들겠다.” 점장은 그렇게 말하면서 1988년 이야기를 했다. 그때는 지금보다 공기가 더 안 좋아서 서울 올림픽을 여느니 마느니 했다는 이야기, 산성비가 내려 인류가 모두 멸망하네 마네 겁에 질려 있었다는 이야기, 그러나 자신은 여전히 잘살고 있다는 이야기. 정용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아저씨, 그건 그 시절 이야기고요, 저는 지금 당장 목이 아프다고요, 아저씨는 집에서 공기청정기 옆에 앉아 있다가 나와서 모르겠지만, 여기 이 계산대 뒤에 있으면 사람들이 묻히고 들어온 미세먼지까지 모두 마셔야 한다고요. 정용은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진 못했다. 점장은 계속 마스크를 벗지 않는 정용을 노려보다가 ‘끙’ 소리를 내곤 다시 편의점 밖으로 나갔다.

그날 밤, 정용은 알바를 마치고 퇴근 준비를 하다가 즉흥적으로 C사에서 나온 마스크 하나를 가방에 챙겨 넣었다. 계산도 하지 않고, 다음 근무자 모르게 슬쩍 챙긴 것이었다. 그런 일은 처음이었던지라 정용은 조금 긴장하기도 했다. 점장이 CCTV를 돌려 보면 어쩌지?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오히려 그 생각이 들자 정용은 그냥 저지르고 말았다. 자르려면 자르라고 하지 뭐. 정용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편의점 밖으로 나왔다.

미세먼지는 오전보다 더 심해졌는지 가로등 불빛 경계가 뿌옇게 뭉개져 보였다. 사람들은 마스크를 쓴 채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고, 전화 통화를 하는 사람도, 대화를 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오전부터 그때까지 쭉 쓰고 있었던 정용의 N사 마스크는 이미 안쪽 면이 거무튀튀하게 변해 있었다. 정용은 바로 가방에서 C사의 마스크를 꺼내 갈아 쓰려고 했지만…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아직 N사의 마스크가 두 개나 남아 있으니까, 이건 아꼈다가 더 심하게 미세먼지가 낀 날 써야지… 어쨌든 이건 한 장에 3500원이니까….

정용은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 사람들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저들 중 누구는 오늘 쓴 마스크를 내일도 또 쓰겠지. 그러다가 정용은 뒤늦게 무언가를 깨닫게 되었다. 그랬구나, 그래서 C사 마스크가 많이 팔렸구나. 부직포 마스크나 코 부분이 볼록 튀어나온 마스크는 아무래도 빨아 쓰긴 어려웠을 테니까… 미세먼지가 계속 이어지니 마스크를 빨아 쓰는 사람도 많겠구나… 그게 더 싸게 먹히는 거였구나…. 정용은 자신이 어떤 진실을 깨달았다고 생각했지만 이상하게도 그것이 그를 더 쓸쓸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생각한 자신이 어쩐지 더 가난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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