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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한 여경에게 경찰 상사가 “우리 조직에서 임신하면 죄인”이라고 발언한 사실이 알려졌다. 해당 여경은 이후 유산했고, 경찰 간부는 조사를 받고 있다. 2020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일이 맞나 의심할 만한 시대착오적 발언이다. 26일 경남 진주경찰서 등에 따르면 지난 2월 초 여경 ㄱ씨는 인사를 앞두고 소속 과장과의 면담에서 출산휴가 예정이니 6개월 유임이 가능한지를 타진했다. 이에 담당 과장은 원칙상 어렵다며 문제의 발언을 했다. 스트레스를 받던 ㄱ씨는 면담 직후 정기검진에서 유산 소식을 들었다. 해당 과장은 “인사지침을 준수하는 게 좋겠다는 서장의 말을 전한 것으로, 비하하려는 취지는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발언 자체도 충격적인데 앞뒤 맞지 않는 변명으로 자기 합리화하고 있다. 실제 그런 인사지침이 있다면 그 또한 문제다. 

(출처:경향신문 자료사진)

이 발언은 우선 정부가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전방위적으로 노력하는 중에 나왔다는 점에서 납득할 수 없다.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92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1.65명, 2017년 기준)을 크게 밑돌며 최하위를 기록했다. 지난 10년간 140조원의 예산을 쏟아붓고도 매달 최저 출생아 수 기록을 경신하자 지난 22일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올 한 해에만 저출산과 고령화 대응에 약 70조원을 투입하는 긴급대책을 내놨다. 그런데 국가 시책을 누구보다 앞장서 실천해야 할 공직자들이 이런 낡은 인식을 가지고 있다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저출산 문제를 연구해온 각 분야 전문가들은 저출산의 근본 원인으로 일터와 일상에 뿌리 깊은 성 불평등을 지목하고 있다. 

지난달 여성노동단체들이 발표한 노동실태 설문조사에서 여성노동자 10명 중 7명이 언어차별 등 직장 내 성차별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1년 전 노동절을 앞두고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발표한 설문조사에선 남녀 모두 직장에서 바꾸고 싶은 성차별 말과 행동으로 ‘결혼·출산·육아’(21.5%) 관련 내용을 가장 많이 꼽았다. 경찰 간부의 문제 발언은 이런 성차별과 맞물린 저출산의 악순환 고리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이번 일을 일개 경찰관서의 일로 치부해서는 안된다. 차제에 모든 일터와 일상에서 성차별 금지와 성평등 문화를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도록 해야 한다. 공직사회에서부터 인식과 문화를 바꾸지 않고서는 성평등과 저출산 문제 해결은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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