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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추어탕집은 수원시 ○○구청 인근 주택가에 있다. 멀지 않은 곳에 공공기관들과 서너 개의 초·중·고등학교와 학원과 상가도 있으니, 식당 자리로는 괜찮은 편이다. 내 방 창문에서 그 집 간판이 보이는 거리고 입에도 맞아, 한 달에 두어 번이지만 내 딴에는 거의 정해놓은 식당이다. 2년 전 이사 와서 얼마 후 오후 서너 시경의 첫 방문에서는 완전 눈칫밥 신세였다. 홀과 주방 아줌마 둘 다 홀 한쪽 바닥에 누워 쉬고 있었던 거다. 특히 홀 아줌마가 혼자 들어서는 허름한 중늙은이 여편네를 향해 노골적으로 귀찮음을 드러냈다. 단박에 눈치를 깐 나는 “아이고, 나중에 올게요” 하며 나오려다, “앉으세요!”라는 퉁명스러운 말을 거역 못해 얻어먹고 나왔다. 나보다 댓살은 많아 보이는 예순 후반의 그녀는 허리가 아주 안 좋았다. 늘 허리와 몸체를 뒤로 뻗대며 일하는 고달픔이 표정과 말투에도 묻어 있어, 혼자 밥 얻어먹으러 가는 내 쪽에서 미소와 감사가 헤퍼지곤 했다. 그 집 밥이 먹고 싶으면 늘 나름 준비와 작심을 했다. 손님이 많은 시간과 아예 없는 시간을 모두 피해 식사시간 직전이나 직후로 내 배를 조정했고, 막상 도착해서도 창 너머로 안의 동정을 살폈다. 다행히 인근 노인주거복지시설에 내 부모님이 계셔서 식사시간에 맞춰 가족 동반 여럿이 갈 때가 가끔 있어, 밀린 미안함을 덜기도 했다.
아직 확진자는 없지만 코로나19로 우리 동네 거리 풍경도 스산하다. ‘방콕’의 갑갑함과 막막함을 견디려 동네를 산책하다보면 자영업, 특히 식당들의 썰렁함에 마음이 더 우울해진다. 텅 빈 홀에 앉아 바깥을 내다보고 있는 식당 사람들과 눈이 마주칠까봐, 안을 들여다보기가 조심스럽다. 그 추어탕집도 마찬가지였다. 붙박이로 일하는 홀과 주방 아줌마 외에 평일 점심 장사에는 설거지 아줌마와 사장 할머니까지 나왔었고, 주말에는 사장 할머니가 주방 아줌마와 짝이 되어 맡아왔다. 1월 말부터 설거지 아줌마를 안 쓰더니, 2월 중순에는 평일 오후였는데 사장 할머니가 나와 있고 홀 아줌마가 안 보였다. 염려를 감추며 “평일인데 나오셨네요” 했더니, 장사가 너무 안돼 아줌마를 내보냈단다. 3월부터는 주방 아줌마마저 평일 점심 장사 세 시간만 쓰고 나머지는 모두 할머니 혼자 한다. 열댓 가지였던 메뉴가 점점 줄어들더니 요즘은 남은 메뉴도 안 되는 경우가 있어, “오늘은 뭘 먹을까요?” 하며 먼저 묻고 마주 웃는다. 가끔 편마비가 있는 할아버지가 나와 식탁 정리를 돕는다.
1월 설 명절 직후부터 노인주거복지시설이 봉쇄 중이어서, 나는 계속 혼자 간다. 사장 할머니가 홀을 지키는 덕분이랄까. 가는 시간에 신경을 덜 써도 사장 할머니는 늘 반가워한다. 혼자 하느라 쉴 시간도 없어 보인다. 게다가 초등학생인 두 손주 녀석들까지 식당에 나와 수선을 피운다. 같이 사는 아들과 며느리가 아파트를 담보로 빚을 내 하필 작년 5월에 치킨집을 냈고, 벌써 때려치우느니 마느니 하며 싸운단다. 새벽 두 시 넘어 퇴근하는 아들과 며느리를 대신해 개학도 없는 손주들 치다꺼리까지 하느라 당신은 더 미치겠단다. 둘 다 당장 때려치우는 게 답 같은데, 요즘 가게를 내놨다간 권리금을 고스란히 떼인단다. 할머니에게 물었더니, 원래 근처 학교 급식조리사였던 설거지 아줌마는 돈 한 푼 안 나오는 휴직을 몇 달째 하고 있고, 홀 아줌마는 구루마(리어카)를 끌며 폐휴지를 모은단다.
그제 오후 배를 차악 고프게 만들어 할머니한테 갔는데, 식당은 뜯겨나가는 중이고 할머니는 안 보였다. 없는 사람들 모두 자신들의 고공에서 죽지 못해 버티고 있다. 떼로 모여 죽기살기로 악이나 써봤으면 싶다.
<최현숙 | 구술생애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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