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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사법농단의 정점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재판에 넘겼다. 전·현직을 통틀어 사법부 수장이 직무와 관련한 범죄 혐의로 법정에 서는 것은 처음이다. 양 전 대법원장이 기소됨으로써 8개월간 계속된 사법농단 수사도 사실상 마무리됐다. 그러나 수사가 종결된다고 단죄까지 끝나는 건 아니다. 양 전 대법원장 1인의 책임을 묻는다고 사법부 전체가 달라질 리도 없다. 시민의 기본권인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사익과 맞바꾼 추악한 거래가 다시는 없도록 발본적 사법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서울중앙지검은 11일 직권남용·공무상비밀누설·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양 전 대법원장을 구속 기소하고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을 불구속 기소했다. 모두 296쪽에 달하는 양 전 대법원장의 공소장에는 47개 범죄사실이 적시됐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소송 등 각종 재판에 개입하고, 비판적인 법관들에게 인사불이익을 주는 등 탄압하고, 판사 비위를 은폐·축소한 혐의 등이다. 양 전 대법원장 재임 중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박 전 대법관은 33개, 후임 처장인 고 전 대법관은 18개 혐의를 받고 있다.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혐의를 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3일 서울 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구치소로 향하는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법농단에 대한 검찰 수사는 지난해 6월 시작됐으나, 의혹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은 그보다 1년여 앞선 2017년 3월이다. 경향신문이 ‘양승태 대법원’의 국제인권법연구회 탄압 지시와 이를 거부한 이탄희 판사의 사표 제출을 보도한 것이 계기가 됐다. 양승태 대법원은 거짓 해명으로 일관하며 파장을 축소하는 데 급급했다. 그러나 일선 법관들이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이후 추가 조사가 이뤄지면서 의혹이 사실로 확인됐다. 특히 대법원이 다수 재판에서 ‘박근혜 청와대’와 거래를 시도한 정황이 드러나며 검찰 수사로 이어졌다. 헌법의 권력분립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한 헌정문란 사건이 법의 심판대에 서기까지 지난한 과정이었다.

이제 공은 검찰을 떠났다. 특별법 제정을 통해 특별재판부를 도입했다면 바람직했겠으나 이미 실기했다. 사법부가 사법농단을 사법적으로 심판해야 하는 기묘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법원은 수사 과정에서 자료 제출을 거부하고 영장을 잇따라 기각하는 등 ‘제 식구 감싸기’로 비판받았다. 향후에도 이런 행태를 되풀이했다가는 바닥에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법원은 오로지 법과 원칙에 따라 공명정대하게 재판하고, 징계시효가 남은 법관들을 조속히 징계해야 한다. 국회도 사법농단 연루 법관들에 대한 탄핵에 즉각 착수해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는 방향의 사법개혁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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