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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500명 안팎의 청년들이 ‘집총 거부’라는 종교적 신념에 따라 1년6개월의 실형을 살고 있다. “국방의 의무를 다른 식으로 이행하겠다”는 이들의 호소는 번번이 법대(法臺)를 넘지 못했다. 1950년 병역법 시행 이후 양심적 병역거부로 전과자가 된 청년만 2만명에 달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1일 종교적 신념에 따라 군대 입영을 거부하는 것은 ‘정당한 병역거부 사유’에 해당하므로 형사처벌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2004년 대법원이 유죄를 선고한 지 14년 만에 판례를 변경한 것이다. 재판부는 “일률적으로 병역의무를 강제하고 불이행에 대한 형사처벌 등으로 제재하는 것은 소수자에 대한 관용이라는 자유민주주의에 반한다”고 했다. 대안도 없이 아무리 엄하게 처벌해도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끝없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불합리한 현실에 종지부를 찍은 판결로 평가한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병역법 위반 관련 선고를 위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리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남북이 대치하는 안보 상황과 병역 특혜에 민감한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그동안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을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양심의 자유는 가장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헌법상 기본권이며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영역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6월 양심적 병역거부자 처벌은 합헌이지만, 대체복무제를 마련하지 않은 것은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판시한 바 있다. 대법원은 이번에 처벌에 초점을 맞춰 무죄를 선고했다. 최근 하급심의 무죄판결 급증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헌재와 대법원의 잇따른 선고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반사회적 대상으로 처벌하는 대신 개인의 양심을 존중하면서도 시민의 의무를 다할 수 있는 방안을 찾도록 한 것으로 의미가 크다.

남은 과제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떳떳하게 국가에 기여하고, 병역특혜 논란이 일지 않도록 정부와 국회가 대체복무제를 정교하게 만드는 것이다. 대체복무제를 검토해온 국방부·법무부·병무청 합동실무추진단은 2020년 1월부터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소방서나 교도소 합숙근무로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대체복무 기간은 27개월과 36개월 중에서 결론이 날 것으로 전망된다. 36개월이라면 육군 현역 복무기간(18개월)의 두 배다. 대체복무자가 군복무자와 비교해 형평성을 잃지 않아야 하지만, 또다시 차별하는 징벌적 제도가 되어선 안된다는 주장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시대 변화에 걸맞은 판결만큼 합리적인 입법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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