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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교통공사가 권력형 채용비리의 온상인 것처럼 연일 대서특필된다. 비교적 채용절차가 간단한 무기계약직으로 먼저 공사에 입사한 후 정규직으로 대거 전환시키는 ‘신고용세습’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올해 3월 서울교통공사가 무기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시킨 1285명 중 108명(8.4%)이 교통공사 재직자의 친·인척이라는 사실을 근거로 ‘문재인, 박원순, 민주노총 채용비리게이트’라고 규정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은 자유한국당의 일방적인 주장을 근거로 일제히 채용비리 잔치판, 정규직 직원들의 고용세습, 친·인척 채용비리, 청소년들에 대한 일자리 약탈 등 문재인 정부와 서울시, 민주노총이 합작한 유사 이래 최대의 비리인 것처럼 집중포화를 퍼붓는다. 참으로 기가 막힌 악선동이다.

윤준병 서울시 행정1부시장이 지난달 24일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서울교통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추진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교통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본격화된 계기는 2016년 5월28일 서울메트로(서울교통공사 전신) 하청업체 소속의 19세 김군이 구의역 스크린도어 수리 중 전동차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이후였다. 사고 초기 김군 개인의 과실로 책임을 전가하려던 서울메트로 측의 태도에 유가족과 시민들의 분노는 일파만파로 번져나갔고 마침내 서울시 교통본부장 입회하에 “서울시 주관으로 진상조사단 구성, 진상조사 실시 후 재발방지대책을 수립하고 시행한다”는 합의가 이뤄졌다. 나는 당시 유족을 대리해 합의에 참여했다. 합의 전후로 두 개의 진상조사기구가 1~2개월간 진상조사를 한 결과 김군 사망 사고의 원인은 안전업무 외주화로 인한 위험의 외주화,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의 구분과 차별로 인한 소통 단절, 경영합리화와 비용절감을 이유로 한 과도한 인력감축 등으로 압축되었다. 그 대책이 안전생명 업무의 직영화, 노동의 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정규직화, 2인 1조 작업이 가능하도록 하는 인원충원 등이었다. 박원순 시장은 진상조사기구의 진상조사 과정에서 지하철 안전과 관련 있는 스크린도어 수리, 차량 검수, 구내운전, 모터카 및 철도장비·궤도 보수, 역무 지원 등의 업무를 안전업무직으로 직영화하고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을 무기계약직으로 고용할 것과 2인 1조 작업이 가능하도록 안전업무 인원을 충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안전업무직 무기계약직 전환방식은 두 가지 경로를 거쳐 이루어졌다. 첫째, 구의역 사고 당시 이미 하청업체에서 근무하고 있던 노동자들에 대해선 하청업체 입사과정의 문제 등 결격사유가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 무기계약직으로 고용하는 제한경쟁 채용방식을 취했다. 구의역 사고 당시 김군이 소속되어 있던 은성psd를 비롯한 하청업체들에서 직접 채용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급여수준은 최저임금을 조금 상회하는 등 매우 열악했다. 이들은 서울메트로의 직영화와 무기계약직으로의 전환에 대한 어떠한 계획도 없는 시기에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수하고 취업한 밑바닥 노동자들이었다. 둘째, 부족한 인원을 신규로 채용하여 충원하는 과정에선 공개채용 방식을 취했는데, 서류심사 및 블라인드 면접 방식이었다. 권력이나 정규직 재직자 지위를 이용한 친·인척 채용의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2017년 5월 서울교통공사 출범으로 무기계약직과 정규직이 동일 업무를 수행하는 일이 발생했다. 예를 들면 스크린도어 수리업무의 경우 서울메트로는 무기계약직, 도시철도는 정규직이 담당한다. 이런 이유로 구의역 사고 1주년을 맞이하여 무기계약직의 완전한 정규직 전환 요구가 표면화되었고, 같은 해 7월17일 서울시는 결단을 내려 무기계약직의 정규직 전환을 발표했다.

서울교통공사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과정을 보면, 정규직화를 전제로 무기계약직을 채용한 것이 아니다. 이명박근혜 정부 시절 경영효율화와 비용감축을 이유로 다수의 위험한 업무와 주변 업무를 외주화했고, 그 결과 안전에 위험이 증가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는 일이 반복됐다. 그러다 19세 김군의 사망사고를 계기로 사회적 자성이 일면서 다시 정규직화를 추진한 것이다.

자유한국당과 조선일보는 안전생명, 상시지속적 업무에서 사고 위험을 줄이고 노동에서의 차별을 없애기 위한 정규직화를 근거도 없이 고용세습, 권력형 채용비리로 둔갑시켰다. 악선동을 당장 멈추라. 그 사악함을 김군이 지켜보고 있다.

<권영국 구의역 사고 시민대책위 진상조사단장·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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