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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재판 어떻게 판결날 거 같아?

- 글쎄… 아무래도 부모 잘못인 거 같은데.

- 시술을 해도 성공률은 55% 정도라잖아. 그 정도면 부모도 불안해서 안 하겠다고 할 수 있지 않나?

- 아니 그 문제가 아니잖아. 그 부모가 특정 종교 신자라서 자기 아이한테 인공의체 시술은 무조건 거부한다는데.

- 그래? … 하긴 종교 때문에 수혈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예전부터 있었지.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인 뇌 기형을 지닌 아이가 있었다. 그대로 두면 얼마 못 살고 죽을 운명이었다. 그런데 인공적으로 합성된 뇌신경을 두뇌 일부에 이식해 넣으면 장기 생존이 가능했다. 그전까지는 치료가 불가능한 증후군이었지만 과학기술의 발달이 또 새로운 의학의 기적을 낳은 것이다. 다만 보통 사람과 같은 일상생활이 가능할지는 아직 임상 사례가 부족해서 더 두고 봐야 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그런데 이 아이의 부모가 합성 뇌신경 시술을 거부하는 일이 일어났다. 주변에서 계속 설득했지만 부모의 입장은 완강했다. 아이의 운명은 처음부터 그렇게 정해진 것이라서 바꾸려고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부모는 특정 종교의 열성 신도였는데, 그 교단에서는 머리 내부, 즉 두뇌에다 뭔가 인공적인 부분을 더하는 행위 일체를 엄격하게 금하고 있었다. 신이 주신 인간 개개인의 존엄성을 해치는 일이기 때문에 절대 해서는 안된다는, 거스를 수 없는 그들만의 엄격한 계율 중 하나였다.

마침내 주변 지인들 중에서 누군가가 그 부모를 신고했고, 결국은 재판까지 가게 되었다. 시술을 받지 않으면 곧 사망할 수밖에 없는 아이임에도 부모가 거부하는 것은 사실상 살인죄나 다름없다는 취지였다. 부모는 시술 비용이 부담스러울 만큼 경제적으로 빈곤하지도 않았고, 다른 의학적 치료는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사람들이었다. 단지 그들의 종교에서 정한 대로 두뇌에 인공적인 부분을 삽입하는 것만큼은 철저히 반대했다.

아이의 사연이 널리 알려지면서 사회적 논쟁이 불붙기 시작했다. 주로 부모가 잘못이라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한편으로는 합성신경 기술이 점점 발전할수록 인간 본래의 존엄성은 흐려질 것이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이번 케이스는 일단 아이를 살려야 한다는 쪽으로 여론의 흐름이 모이고 있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합성신경 기술, 더 나아가 높은 수준의 사이보그 기술을 과연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논쟁을 새로운 국면으로 이끌었다. 철학자와 작가, 사회학자, 과학자 등 여러 분야의 저명인사들이 방송과 지면을 통해 동시다발적인 토론을 이어 갔다. 재판부에서도 비공개 자문회의를 몇 차례 열 정도였다.

시간이 좀 더 지나자 판세는 과학기술 그 자체에 대한 찬반 양편으로 갈리는 양상을 보였다. 한쪽에서는 과학기술이 종교화되고 있다며 맹목적인 과학기술 우선주의를 비판했고, 반대쪽에서는 과학적 사고방식의 본질을 못 보고 겉모습으로만 재단하는 화물숭배과학(cargo cult science)이나 다름없다고 반격했다. 그러는 와중에 판결 날짜는 시시각각 닥쳐왔다.

과학기술이 역사상 우리에게 준 혜택은 새삼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특히 의료 복지라는 차원에서 그렇다. 인류의 평균수명이 늘어난 것은 전적으로 과학의 발전 덕분이며,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긴 수명을 누리며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얻었다. 인류 문화가 갈수록 풍성해진 것은 그로 인한 2차적 효과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그런데 현대 의학은 종교 및 철학과 유쾌하지 못한 접점을 몇몇 지니고 있다. 신앙이나 가치관 문제로 의학적 조치를 거부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이다. 최근에도 한 전직 축구선수가 아내 출산 때 무통주사를 거부했다는 얘기, 또 아이에게 예방접종을 거부하는 부모들 등등의 논란이 있었다. 범위를 더 넓혀 보면, 시험관아기 시술이나 낙태, 연명치료와 안락사처럼 쉽사리 어느 쪽이 옳은지 말하기 어려운 문제들도 있다.

의학 분야의 발전이 계속될 경우 빠르면 21세기 중반에는 합성 인체 조직이 실용화되어 SF에서나 보던 사이보그가 현실에 등장할지도 모른다. 글자 그대로 인간과 기계의 결합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특히 두뇌에 인공 조직이 들어간다면 인류의 정체성에 대한 치열한 논쟁은 물론이고 실제로 신인류의 탄생까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새로운 과학의 탄생은 언제나 새로운 윤리 문제와 쌍둥이로 태어난다. 갈수록 곱씹어봐야 할 명제가 아닐 수 없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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