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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5차 핵실험 후 북핵 정책의 근본적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여당이 제기하는 핵무장론이 그것이다. 일부 야당의원도 동조하고 있다. 그러나 ‘자위권 차원의 독자적 핵무장’이든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든 핵무장론은 비현실적이며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 집권당이 핵에 핵으로 맞서자고 주장하는 것은 북핵 문제를 진지하게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없다는 자기 고백이나 다름없다.

무엇보다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미국과 국제사회가 강력하게 반대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5차 핵실험 후 미국이 부쩍 강조하는 ‘확장억제’는 한반도에 대한 핵우산 제공을 뜻한다. 이는 동시에 한국의 핵무장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이 핵무장을 추구한다면 한·미 동맹 파기와 국제사회의 경제·외교적 고립을 무릅써야 한다. 대외무역 의존도가 절대적인 한국이 미국과 국제사회를 등지고 살아가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북핵에 대처하기 위해 산업화 이전 시기 궁핍한 삶으로의 회귀를 감내하겠다는 시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핵무장론의 현실적 제약은 이것 말고도 많다. 예컨대 핵무장은 미국이 갖고 있는 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하지 않는 한 완성할 수 없다. 더 중요한 것은 핵무장이 북핵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남한에 핵무기가 있다고 북한이 핵개발을 중단할 리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북핵 개발의 명분을 제공하고 남북간 핵 능력 고도화 경쟁만 촉진시킬 것이다. 이는 동북아 핵무장 도미노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여당 일각이나 미국 조야에서 거론하는 선제타격론은 한반도 공멸을 야기할 수 있는 지극히 위험한 발상이다. 시민들이 원하는 것은 평화지 전쟁이 아니다. 

핵에는 핵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논리는 미국과 소련 같은 강대국간에나 가능한 것이다. 한반도의 좁은 땅에서 핵으로 서로 위협하면 공멸을 초래할 뿐이다. 핵무장론을 포함해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어떠한 주장도 정당성을 얻을 수 없는 이유이다. 북핵 문제는 어디까지나 평화적 해결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 집권세력이 제기하는 핵무장론은 시민의 북핵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에 편승한 안보 포퓰리즘에 불과하다. 나라의 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집권세력이 안보의 관점을 포기하고 불안감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것은 정말 걱정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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