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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영화에 대한 ‘사상검증’까지 벌이겠다는 건가. 얼마 전 부산시의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사퇴 종용으로 영화제 독립성 훼손 논란을 빚은 터에 이번에는 ‘영화 진흥’에 힘써야 할 영화진흥위원회가 영화제 상영작의 사전심의와 독립영화 지원방식 변경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영화제 상영작의 경우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영비법)의 예외조항에 따라 사전 상영등급 심의를 면제받고 있는데, 이 규정을 고쳐 영진위에서 상영등급 심의 면제 여부를 최종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영진위는 “상영등급 분류 면제 추천제도를 오·남용하는 사례를 방지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영화제 상영작들의 사전심의를 아예 제도화해 <다이빙벨> <두개의 문>처럼 정권 비판적인 영화 상영을 원천 봉쇄하려는 속셈인 게 뻔하다. 부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 4명이 지난 2일 김세훈 영진위원장을 만나 “규정 개정이 영화제의 독립성과 표현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전달한 것도 그래서다. 김 위원장이 이 자리에서 영비법 예외조항 개정 계획을 일단 보류하겠다고 밝혔다지만 실제로는 이미 피해사례가 나오고 있다. 한국 영화계의 사관학교로 허진호·임상수·봉준호·김태용·최동훈 감독 등 한국 영화 명장의 산실인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졸업영화제가 열리지 못하는 사태가 빚어진 것이다. 어제부터 3일간 열릴 예정이던 졸업영화제는 “영진위의 등급 분류 면제 추천을 받지 못해” 행사가 취소됐다고 한다.

한국 영화 관람객 100만명 돌파의 기록을 세운 <서편제>(1993년) 개봉 당시 단성사 앞에 관람객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출처 : 경향DB)


영진위가 예술영화전용관 지원 방식을 바꾼 것 역시 독립영화에 대한 사실상의 사전검열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영진위의 이른바 ‘한국 예술영화 좌석점유율 지원 사업’은 영진위가 선정한 예술영화 26편에 대해서만 지원금을 주겠다는 내용이다. 한마디로 정부 입맛에 맞는 영화들만 골라 지원하겠다는 뜻이다. 영진위의 이런 시대역행적 행보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 출신 김 위원장이 취임하자마자 진행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순수문학’만을 우수도서에 선정하는 방침으로 물의를 빚은 상황에서 영화 심의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현 정권이 모든 문화·예술 표현 자유에 족쇄를 채우려 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자유로운 영화 정신을 위축시키고 진취적인 영화 축제를 죽이는 영진위의 영화제 상영작 사전심의와 독립영화 사전검열 방침은 무조건 철회돼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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