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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들어 올해 처음 발간한 초등 6년 국정 사회교과서 역사 영역 내용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중·고교 국정교과서는 집필진과 심의진, 집필기준도 공개하지 않아 ‘복면집필’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 새 초등 교과서는 위안부와 관련해 “강제로 전쟁터에 끌려간 젊은 여성들은 일본군에게 많은 고통을 당했다”고 기술한 게 전부다. 구체성이 결여돼 위안부들의 고통을 실감하기 어렵다. 종전 실험본 교과서는 ‘전쟁터의 일본군 위안부’라는 제목의 사진을 싣고 ‘전쟁터에 강제로 끌려가 일본군의 성노예가 되었다’고 설명했다. 이 사진은 괴로워하며 배를 어루만지는 임신한 위안부 곁에서 웃고 있는 일본군 모습을 담아 위안부들의 고통을 잘 드러낸다. 교육부는 “위안부와 성노예라는 표현을 초등학생들이 학습하는 것은 적정하지 않다는 의견을 고려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위안부는 정부 공식용어이고 성노예는 국제 사회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굴욕적인 내용으로 ‘위안부 합의’를 한 정부가 ‘위안부 지우기’에 나섰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한국사교과서 국정화저지 네트워크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원들이 22일 서울 종로 헌법재판소 앞에서 한국사 국정교과서 고시 헌법소원 제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_경향DB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수많은 시민과 학생을 학살한 군대에 대해 종전의 ‘계엄군’을 ‘군대’로 바꿔 전두환 정권의 부정적 이미지를 희석시키려 했다. 1948년 이승만 정부 출범에 대해서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란 종전 기술 대신 ‘대한민국 수립’으로 바꿨다. 정부가 상해임시정부를 부정하고 보수층의 ‘건국절’ 요구를 수용한 셈이다. 국정으로 제작된 초등 6년 사회교과서는 중·고교 국정 역사교과서의 집필 방향과 내용을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절대로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지난달 공개된 교육부의 ‘2016 업무계획’도 황당하다. 이 내용을 중·고교 국정 역사교과서 개발의 5대 핵심 전략 중 하나인 ‘학생의 꿈과 끼를 키우겠습니다’ 항목에 포함시킨 것이다. 국민 다수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 시대착오적이라는 비난을 받은 국정교과서가 학생의 꿈과 끼를 향상시킨다는 상상력이 놀라울 뿐이다.
행정자치부가 ‘복면집필’로 원성을 산 교육부에 ‘투명정부 평가’ 최고 등급을 부여한 것도 말이 안된다. 교육부는 포상을 받고, 국정교과서 개발 등은 정부 우수사례로 대국민 홍보에 활용된다고 하니 이런 코미디도 없다. 국정교과서를 강행하는 한 이런 우스꽝스러운 일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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