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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성완종 리스트’ 수사와 관련해 “특정인이 특정인을 찍은 것에 국한해 수사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불법 정치자금 전반에 대한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황 장관은 국회에서 서기호 정의당 의원이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메모에 기재된 8명을 우선 수사해야 한다”고 촉구하자 이같이 말했다. 메모에 등장하는 이완구 국무총리,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 김기춘·허태열 전 비서실장,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 홍준표 경남지사, 유정복 인천시장, 부산시장 외에 야당을 포함한 정치권 전체로 수사를 확대할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8명에 대한 소환조사도 시작되기 전에 ‘수사 확대’를 거론한 것은 일의 선후에 맞지 않고 의도 역시 의심스럽다. 벌써부터 ‘물타기’를 하겠다는 건가.

황 장관 발언은 박근혜 대통령의 인식과도 맥을 같이한다. 박 대통령은 이 총리가 사의를 표명한 뒤 “검찰은 정치개혁 차원에서 확실히 수사해 모든 것을 명백히 밝혀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앞서 박 대통령은 지난달 17일 “이번에 총리께서 추진하는 부패청산은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마시고 국민과 나라 경제를 위해 사명감으로 해주시기를 바란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총리가 대국민담화를 통해 ‘부정부패 발본색원’을 다짐한 데 전폭적 지원 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하지만 부패를 발본색원하겠다던 주체가 발본색원의 대상으로 바뀌면서 대통령의 말도 함께 바뀌었다. ‘부패청산’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별안간 ‘정치개혁’이 등장했다. 정권 출범 이후 최악의 위기를 정치권 사정을 통해 돌파해보겠다는 속내가 비친다. 황 장관은 대통령 뜻을 미리 읽고 검찰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셈이다.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팀장 문무일 검사장) 사무실이 있는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검찰청에서 22일 취재진이 소환 대상자 등을 기다리고 있다. (출처 : 경향DB)


여당이든 야당이든, 친박근혜계이든 친이명박계이든, 불법행위를 저지른 혐의가 있다면 마땅히 수사해야 한다. 다만 수사는 법과 원칙, 사실과 증거에 따라 하는 것이다. 금품을 공여했다는 증언을 확보하고도 공소시효부터 따지던 검찰이 갑자기 ‘불법 정치자금 전반’을 수사하겠다면 어느 누가 납득하겠는가. 정치적 의도가 개입된 수사가 어떠한 결말을 낳는지는 성 전 회장의 비극적 죽음이 이미 보여주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정권이 또다시 검찰 수사를 왜곡시키려 한다면 시민이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특별수사팀은 좌고우면하지 말고 오직 사실을 캐겠다는 일념으로 철저하고 공정하게 수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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