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이 청와대로부터 사퇴 종용을 받고 퇴진을 결심했다가 돌연 청와대가 입장을 바꾸는 바람에 자리를 보전하게 됐다고 한다. 어제 발매된 ‘주간경향’ 보도에 따르면 청와대가 현 위원장을 교체하려다 유임으로 급선회했고, 그 시기는 박근혜 대통령의 거듭된 인사 실패로 여론이 들끓던 지난 3월 말 즈음이었다는 것이다. 인권위 안팎의 분석처럼 청와대가 인사청문회에 대한 부담 때문에 현 위원장의 교체를 포기했다면 이는 ‘인사 실패’보다 더 한심한 ‘인사 포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인권위는 모든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정권과 무관하게, 또 입법·행정·사법부와도 독립적으로 기능하도록 보장된 국가기관이다. 현 위원장이 이명박 정부의 인권 및 민주주의 후퇴에 일조하고 인권위의 독립성과 국민의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한 장본인임은 용산참사·PD수첩·민간인사찰·미네르바 사건 등 재임 중의 각종 인권 관련 사안 처리를 통해 충분히 보여주었다. 더욱이 그는 지난해 7월 인사청문회에서 논문 표절 및 업무추진비 부당 사용 의혹 등에 대해 허위진술하고 탈북자 2만여명의 인적사항 등 개인정보를 불법 획득해 편지를 발송한 혐의로 고발돼 검찰 소환조사까지 앞두고 있다.


(경향DB)


박근혜 정부가 현 위원장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것은 이명박 정부가 만들어 놓은 ‘식물 인권위’를 답습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인사 실패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그랬다면 무능의 극치이고, 그게 아니라면 ‘현병철식 인권위원회’가 이른바 새 정부가 추구하는 인권정책에 부합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청와대는 “인사 문제와 관련해서는 어떤 것도 확인해줄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니 그런 의심이 더욱 가시지 않는다. 인권 문제는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에 해당하는 만큼 그 수장 임명권자인 박 대통령은 입장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이미 주장한 바지만 인권위의 독립성은 이를 무너뜨린 현 위원장의 사퇴 없이는 보호될 수 없다. 현 위원장은 청와대의 사퇴 종용을 처음 받고 “인권위의 독립성이 있는데 어떻게 그만둘 수 있느냐”고 반발했다고 한다. 현 위원장이 지키려고 했던 게 자리가 아니라 인권위의 독립성이었다면 청와대의 사퇴 종용 사실과 그 내용을 공개하고 자진 사퇴하는 게 옳은 길이다. 그것이 스스로를 위해서나 4년 가까이 몸담았던 조직을 위한 최선의 봉사다. 현 위원장은 더 이상 새 정부와 국민 인권의 앞날에 부담을 주지 않도록 현명하게 처신하기 바란다.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