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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지금 한·미원자력 협정 개정을 위해서 분주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직후 첫 번째로 언급한 것이 원자력협정 개정문제였음을 감안하면 현 정부가 얼마나 이 협정을 개정하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있다. 한·미원자력협정을 개정하려는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핵재처리를 금지하고 있는 부분을 개정하려는 것이다. 그 결과는 어떻게 나올까? 짐작건대 핵재처리는 불가능할 것이다. 핵확산을 금지하는 미국의 태도는 너무나 강경하다. 한국에 핵재처리권한을 주면 핵무기 보유를 원하는 나라들은 모두 핵무기를 보유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미국이 절대 허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럼 이를 모를 리 없는 정부가 굳이 이 조약을 개정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 정부가 추진하려 하는 핵재처리 방식은 국제적인 표준방식인 습식처리가 아니다. 습식처리를 하면 순수한 플루토늄이 분리되어 핵무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해서는 미국을 설득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른바 ‘핵확산성이 없는’ 파이로건식처리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순수한 플루토늄이 분리되지 않기 때문에 핵무기를 만들 수가 없으니 핵확산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파이로건식처리 방식으로 분리된 ‘순수하지 않은 플루토늄’은 쓸모가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핵무기를 만들 수도 없고, 핵발전소에서 재사용할 수도 없다. 이 ‘순수하지 않은 플루토늄’은 오로지 소듐고속증식로에서만 사용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소듐고속증식로는 어떤 원자로일까? 이 원자로는 고속로이면서 증식로이다. 고속로는 핵반응에서 나오는 중성자의 속도가 빠른 원자로를 말한다. 보통의 전기를 생산하는 원자로들은 모두 저속로라고 볼 수 있다. 중성자의 속도를 낮추어 핵반응을 지속시키면서 열을 발생시키는 원리인 것이다. 이 열을 이용하여 물을 끓이고 그 증기를 이용하여 전기를 생산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반적인 원자로(저속로)에 비해서 고속로는 열을 많이 발생시키지 않으므로 전기를 생산하는 데는 적절하지 않다. 그렇다면 고속로의 목적은 무엇일까? 바로 증식이다. 증식이라는 것은 적은 양의 플루토늄을 넣고 핵반응을 시켜서 더 많은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원자로를 말한다. 이렇게 플루토늄의 양이 많아지는 원자로를 증식로라고 부른다.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경향DB)


소듐고속증식로는 이론대로라면 적은 양의 플루토늄을 넣고 반응시키면 더 많은 플루토늄이 발생하는 원자로이다. 그래서 ‘꿈의 원자로’라고 불린다. 쌀을 넣고 밥을 하면 더 많은 쌀이 만들어지는 도깨비방망이 같은 원자로인 것이다. 그러나 이 ‘꿈의 원자로’는 기술적으로 실패했다. 미국과 프랑스가 시도하다가 포기했고, 일본이 재도전을 했으나 또다시 실패했다. 실패한 원인은 바로 위험성이었다. 세계에서 사고가 나지 않은 소듐고속증식로는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액체 소듐(나트륨)을 냉각재로 쓰기 때문인데, 액체 소듐은 공기와 접촉하면 화재가 나고 수분과 접촉하면 폭발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자. 우리나라에서도 냉각수 누출사고는 수십 번 일어났다. 최근에는 월성4호기에서도 냉각수 누출사고가 있었다. 이렇게 냉각수가 누출되기만 하면 화재나 폭발이 일어나는데 그런 사고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는가? 프랑스의 피닉스와 슈퍼피닉스도 사고 때문에 포기한 상태이고, 일본의 고속증식로인 몬쥬도 지속적으로 사고와 수리를 반복했고, 지금은 영구 폐쇄를 논의하고 있다. 그래서 사실 소듐고속증식로는 불가능한 원자로임이 입증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정부의 재처리 계획은 바로 파이로건식처리에 이은 소듐고속증식이다. 그러나 소듐고속증식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결국 소듐고속증식로가 없으면 파이로건식처리는 헛된 노력이 되고 만다. 즉 정부의 재처리 계획은 핵무기를 만들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핵발전에 이용할 수도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핵확산성이 완전히 없지도 않아서(이렇게 부분적인 재처리가 된 후에는 제대로 된 재처리가 더 쉬워지기 때문에) 미국 역시 파이로건식처리를 허용해줄 가능성이 아주 낮다. 그렇다면 이 모든 헛된 시도들은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 것일까? 이런 황당한 계획을 밀어붙일 때 도대체 누가 이익을 보게 되는 것일까? 당연히 국민은 아니다. 정부도 아니다. 그럼 누구일까?


필자가 추측하기로는 정부에서도 산업통상자원부(지식경제부) 공무원들은 이 재처리에 반대하거나 관심이 없다. 현실성이 없는 계획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래창조과학부의 공무원 중 일부는 이 문제에 관심이 크다. 즉 연구비와 관련된 부서는 관심이 있고 전기생산 및 산업을 주도하는 부서는 관심이 없다는 의미다. 그래서 필자는 원자력연구원 등 일부 연구소의 연구재원마련이 이 모든 소란의 목적이 아닌가 짐작하고 있다.



김익중 | 동국대 의대 교수·경주환경운동연합 연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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