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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이면 막가자는 것인가.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에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던 정홍원 국무총리를 유임시켰다. 안대희·문창극 총리 지명자가 결정적 흠결로 연달아 낙마하자 아예 새 총리 후보 지명을 포기한 것이다. 다른 사건도 아니고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지고 사퇴한 총리를 재신임한, 헌정사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기상천외의 결정이다. 

윤두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국정 과제가 산적해 있는데 청문회 과정에서 노출된 문제로 국정 공백과 국론 분열이 큰 상황이어서”라고 유임 배경을 설명했다. 기만이고 적반하장이다. 총리 후보가 연이어 인사청문회에 서기도 전에 사퇴한 것은 결격 사유가 그만큼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잘못된 ‘인사 코드’와 부실 검증이 야기한 인사 실패의 최종 책임은 임명권자인 박 대통령에게 있다. 국정 공백의 장기화, 국론 분열 역시 그로 인해 초래된 것이다. 한데 청문회와 여론을 탓하며 인사 책무를 포기하고, 스스로 사의를 수리했던 정 총리를 주저앉혔다. 박 대통령이 지명한 총리 후보들을 잇달아 낙마시킨 국민 여론에 대거리를 하며 오기를 부리는 꼴이다. 그리고 국민 눈높이에 맞는 총리감 하나 지명할 능력이 없는 무능한 정권임을 자인한 것이다.


국가 수반으로서 대통령의 인사권은 권한이기에 앞서 국민이 부여한 무거운 의무이다. 맘대로 포기하고 말고 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장상·장대환 총리 후보자가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의 반대로 국회 인준이 부결된 뒤, 결국 야당과의 물밑 협의를 거쳐 세번째 총리 후보를 지명한 바 있다. 그게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의 숙명일 터이다. 두 차례의 ‘총리 인사 참사’를 교훈 삼아 “폭넓게 인재를 찾아라” “통합 인사를 하라”는 민의를 외면한 채 ‘경질 총리’를 유임시키는 어깃장을 놓고 있으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정 총리가 왜 물러나게 된 것인지 벌써 깡그리 잊은 건가. 세월호 참사에 총체적 무능을 보인 정부가 최소한의 책임을 진다는 뜻으로 물러났다. 박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를 통해 세월호 참사에 사과하며 “달라진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했다. 그런 정 총리를 다시 기용했으니, 이제 세월호 참사에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것인가. 게다가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져야 할 총리가 세월호 재발을 막기 위한 대책과 국가 개조 차원의 혁신을 이끄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지게 됐다. 총리로서 권위와 국정의 동력이 생길 리 만무하다. 뻔한 ‘식물 총리’를 고집했다. 박 대통령에게 김기춘 비서실장만 있으면 만사형통이고, 만기친람식 1인 통치의 기조를 밀고가겠다는 대국민 포고나 다름없다.

박 대통령이 세월호 사과 대국민담화에서 눈물까지 흘리며 다짐한 변화와 쇄신은 결국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려는 립서비스였는지 묻고 싶다. 박 대통령이 변하지 않으면 인적 쇄신과 국정 개혁은 요원하다. 만사(萬事)인 인사의 실패가 어디서 비롯되는가에 대한 통렬한 자성이 우선이다. 이제라도 ‘경질 총리’ 유임 같은 꼼수를 접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널리 인재를 구해 변화를 추동할 새로운 총리를 찾기 바란다. 대체 언제까지 대통령의 역주행과 오기·독선의 국정운영을 지켜봐야 하는지 답답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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