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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1일 발생한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는 119상황실과 현장 구조대 간 무선통신망이 부실했던 데다 현장 지휘관이 상황 전파를 소홀히 하는 등 소방당국의 부실대응이 인명피해를 키운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 소방합동조사단은 11일 제천 화재 조사 결과 최종 브리핑을 통해 “지휘관들은 상황 수집과 전달에 소홀했으며 인명구조 요청에도 즉각 반응하지 않는 부실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소방청은 이일 충북소방본부장을 직위해제하고, 간부 4명을 중징계하기로 했다.

브리핑 내용을 보면 화재 직후 2층 여성 사우나에서 충북소방본부 119상황실로 구조요청 전화가 걸려왔지만 상황실과 현장 구조대 간 무전이 되지 않았다.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조직이 위급 시 통신망을 불통상태로 두었다니 믿을 수가 없다. 게다가 현장 지휘관은 2층 상황을 전달받은 뒤에도 이를 무전으로 전파하지 않았다. 결국 늑장 구조로 2층 여성 사우나에서 20명의 아까운 인명이 희생됐다. 초기 지휘를 맡았던 간부가 눈앞에 보이는 위험과 구조상황에만 집중하느라 건물 뒤편에 있던 비상구의 존재나 상태도 확인하지 못했다. 운전자가 경험과 훈련 부족으로 굴절차 조작이 원활하지 못했다는 점도 확인됐다. 아직 석연치 않은 점도 있다. 조사단은 소방대가 비상계단을 통한 진입을 시도했다가 강한 열기와 연기로 후퇴했다고 밝혔지만 유족들은 계단에 화재 흔적이 없다며 조사단의 주장을 반박했다.

화재경보기와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았고, 건물 내 배연창과 비상통로를 잠가 놓은 데다 테라스를 불법증축한 건물주의 과실도 무겁다. 소방대원의 현장 진입을 가로막은 고질적 불법주차도 화를 키웠다. 많은 이들이 참사에 책임이 있는 셈이다. 하지만 무선통신만 원활하게 가동됐더라도 인명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소방당국의 부실대응 책임은 엄중하다. 인력과 장비 부족 등 소방당국이 처한 어려움은 이해하지만 기본 중의 기본인 통신망 점검을 생략한 과실마저 덮을 수는 없다.

수많은 안전사고에서 확인돼 온 것처럼 매뉴얼이나 규정은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구비돼 있다. 문제는 ‘별일 없겠지’ 하며 지키지 않는 안전불감증이다. 안전불감증은 윤리의식의 부재와 다를 게 없다. 이 고질병을 어떻게 치유해야 할지 우리 사회의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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