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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수학문제 풀이를 도와주다가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A와 B의 달리기 기록을 비교하여 누가 더 달리기를 잘하는지 대답하는 문제였는데, 평균값은 정확히 다 구해놓고, 그 다음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다. 평균값이 누가 작니? A. 그럼 누가 달리기를 더 잘하는 거니? 그건 모르지. 이런 식의 대화가 계속 반복됐다. 내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나기 시작하자 문제가 이상한 거라며 저도 볼멘소리로 응수한다. 평균값이 무슨 의미야. 각각 다른 지표를 가늠하는 기준을 만드는 거잖아. 평균이 높은 사람이 잘하는 거겠니, 평균이 낮은 사람이 잘하는 거겠니. 물었더니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하지만 A랑 B랑은 달리기 횟수가 다르단 말야. 얼굴이 벌개져서 대드는데 뭔가 느낌이 이상해서 다시 문제지를 봤다. A는 5번을 달리고, B는 4번을 달렸다. 아이의 주장은 간단했다. 두 사람에게 주어진 기회의 수가 다른데, 각자의 평균값을 구하고 평균 속도의 차이를 물어볼 수는 있지만 그걸 두고 잘했다, 못했다를 평가할 수는 없다는 거였다. A에게 주어졌던 5번째 기회가 B에게도 주어졌다면 결과가 또 어떻게 달라졌을지 알 수 없는데, 그걸 감안하지 않고 잘했다 못했다를 평가하는 건 부당한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내가 잠시 주춤하는 듯하자 아이는 자기 생각에 이건 틀린 질문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반박할 말은 없는데, 아이하고 기 싸움에 밀리기는 싫어 한마디 했다. 넌 무슨 수학을 인문학적으로 푸니.

아이를 내보내고 나는 혼란스럽다. 세상 모든 평균에 의심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평균 점수, 평균 소득, 평균 부채, 평균 수명, 평균 자산…. 어른들 흔히 하시는 중간만 가면 된다고 하는 말씀이 평균을 벗어나지 않으면 안전하다는 뜻인 줄 알았다. 평균을 넘어서면 잘하는 것 같고, 평균에 못 미치면 불안했다. 평균 지대 안에 있는데 불만이 생기면 그건 나의 욕심이거나 이기심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알고 있는 평균의 수치들은 과연 공정하게 계산된 값일까. 누군가에게 유리하게 계산된 평균을 기준으로 삼고 안달복달했던 건 아닐까, 나에게 유리하게 계산된 평균을 가지고 하니 못하니 다른 사람의 열심을 폄하했던 건 아닐까. 삶은 개별적인 것이라고 말하면서 삶에 대한 평가는 전체와 겨루어 하고 있었다는 자각에 새삼 씁쓸하다.

새해 초부터 최저임금 때문에 시끄럽다. 그간 최저임금이 기본 생계 수준을 보장하지 못하니 생계 가능한 수준의 임금 기준을 마련한 건데 마치 최저임금이 곧 경제를 무너뜨릴 것처럼 사방에서 난리다. 인상된 최저임금 때문에 소규모 자영업자들은 망할 것이고, 물가도 오를 것이고, 고용 비용을 줄이기 위해 일자리는 더욱 줄어들 것이란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늘어나는 기업 비용을 수치로 보고 있으면 그들의 불안한 전망은 꽤 설득력 있게 보인다. 불안의 시범사례라도 남기고 싶은 것처럼 강남 한복판에 있는 아파트에서는 경비원 전원을 해고했다고 한다. 그런 극단적인 경우는 아니더라도 적잖은 사업장에서 다양한 편법이 등장하고 있는 모양이다. 기업에서는 상여금의 퍼센트를 조정하고, 개인사업자들은 휴게시간을 늘리거나 식대 지급을 중단하는 식으로 용역직이나 아르바이트의 복지를 제한한다. 그렇다면 그런 편법으로 최저임금 인상에도 인건비는 초과되지 않는 방안을 마련했으니 물가는 인상하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닌가. 그런데 그렇지도 않다. 이미 물가는 오르고 있다. 안으로는 기존의 인건비 맞춘 비용을 유지하기 위한 편법을 쓰면서, 밖으로는 인상된 최저임금 기준에 따른 인건비 상승비용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수를 인문학적으로 접근하면 안된다는 내 말은 틀린 것 같다. 수는, 삶의 조건에 필요한 어떤 수는, 인간과 삶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가령 인건비는 비용이 아니라 삶을 지불하는 거라는, 서로 다른 기회 조건이 이룬 성취를 똑같은 잣대로 비교해서는 안된다는, 그런 고민의 수. 그런 수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경제학에서는 뭐라고 부를까. 왠지 기업가들은 마이너스의 수, 노동자들은 플러스의 수라고 부를 것만 같다.

<한지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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