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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방영된 드라마 <마녀의 법정>에서 여주인공 마이듬 검사(정려원 분)는 독특한 캐릭터였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의 캔디도, 착하고 아름다워 남자에게 구원받는 신데렐라도 아니었다. “나는 약자를 위해 싸우지 않는다. 나를 위해 싸운다”며 거침없이 야망을 드러내는 여성이었다. 드라마는 마이듬이 여성·아동 대상 성범죄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내면적 성장을 이루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내 호평받았다.

배우 정려원이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신관에서 열린 2017 KBS 연기대상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7 KBS 연기대상’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배우 정려원씨의 수상소감도 마이듬다웠다. “(성범죄는) 감기처럼 만연하게 퍼져 있지만 가해자들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 드라마를 통해 성범죄, 성폭력에 대한 법이 강화돼 가해자들이 처벌을 제대로 받고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더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다음날엔 “너무 떨어서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못했다”며 인스타그램에 수상소감을 다시 올렸다.

한국에서 배우, 특히 여배우가 사회적 이슈와 관련해 발언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엔터테인먼트업계는 ‘소신 발언’을 반기지 않는다. 시상식 때마다 천편일률적인 ‘감사합니다’ 시리즈가 반복되는 것도 그래서일 테다. 이제 그 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으니, 더 많은 여배우들이 속내를 드러내게 될 것이다.

7일(현지시간)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선 검은색 드레스를 입은 여배우들이 ‘반성폭력’의 목소리를 냈다. 할리우드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이 수십 년간 여배우 등을 성추행한 사실이 폭로된 이후 벌어진 ‘미 투(MeToo) 운동’의 연장선상이었다. 이 캠페인을 주도한 여배우들이 직장 내 성폭력·성차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타임스 업’이란 단체를 만들었고, 검은 드레스를 입은 것은 타임스 업의 첫 단체행동이었다. 메릴 스트리프는 “사람들은 이제 힘의 불균형을 안다. 그것이 도처에서 (성적) 학대를 초래했다.

이를 바로잡기 원한다”고 말했다. 오프라 윈프리는 공로상 ‘세실 B 드밀’상을 수상하며 “그들(성폭력 가해자들)의 시간은 끝났다. 새로운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고 외쳤다. 윈프리가 옳다.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의 어록을 빌리면 “지금은 2018년이니까”.

<김민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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