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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바닥면적 224.69㎡인 세종병원은 소방법상 스프링클러를 의무설치해야 할 시설이 아니었다. 또 화재 때 자동으로 창문이 열리는 배연창과 유독가스를 뽑아내고 신선한 공기를 넣어주는 제연설비도 설치할 의무가 없었다. 현행법상 ‘6층 이상이거나 바닥면적 1000㎡ 이상’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1인당 4.3㎡의 면적만 확보하면 되므로 세종병원이 20인실 병실을 둔 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쉽게 불이 붙는 성질 때문에 화재를 키운 드라이비트 외장재를 금지하는 규정도 1992년 신축된 세종병원에는 적용할 수 없다. 불에 잘 타지 않는 소재로 시공해야 한다는 규정이 도입된 것은 2015년이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가 있는 병원의 경우 더욱 엄격한 기준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행법은 건물특성과 용도를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층·면적만 기준으로 삼아왔다. 사고 때마다 호들갑을 떨며 대책을 마련하고 개정법을 만들었지만 한결같이 ‘땜질’ 처방이었다. 2010년 노인 10명이 사망한 경북 포항 인덕 노인요양원 화재 이후 노인·장애인 요양시설 등에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됐다. 그러나 치료 목적의 요양병원은 빠졌다. 2014년 전남 장성의 요양병원 화재로 24명이 사망한 뒤 부랴부랴 요양병원에까지 소급 적용됐다. 그러나 그때도 역시 세종병원과 같은 1000여곳의 중소 일반병원은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때그때 땜질 처방만 내리다가 이번 참사를 겪게 된 것이다. 반복된 비극에서 보듯 화재는 크기와 층수에 좌우되지 않는다. 도리어 낡고 오래된 건물에서 주로 일어난다. 병원만이 아니다. 더 이상 면적 몇 ㎡ 이상이니, 몇 층 이상이니 하는 잣대로 시민의 생명을 저울질하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비용을 핑계로 안전의 빗장을 풀어주고, 문제가 날 때마다 찔금찔끔 보수한 대가가 끔찍한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교훈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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