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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에 지방이 없다. 48일 앞으로 다가온 6·13 지방선거의 역설적 상황이다. 여야 후보들이 결정되는 등 본격적인 선거 국면으로 접어들었는데도 지방분권과 풀뿌리민주주의 관련 의제들이 조명되지 못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등 대형 이슈에 가려진 데다 중앙 정치권이 정쟁에 휩싸이면서 지역 민생 의제가 사라진 결과이다. 경향신문 선거자문단도 “중앙 정치권의 정쟁 이슈가 지방선거판을 뒤덮고 있는 게 이번 선거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지방선거가 유독 지방자치와 동떨어지고 있는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선거 초반부터 지역 주민의 삶과 밀착된 정책이나 공약, 지방분권에 대한 논의는 실종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육개혁을 다룰 교육감 선거도 관심권 밖으로 밀려나 있다. 무상급식으로 복지담론 대결을 펼쳤던 8년 전보다 오히려 후퇴한 느낌이다. 지방정부의 자치권을 강화하는 ‘지방분권’은 개헌이 무산되면서 힘을 잃었고, 지방정부에 대한 주민들의 결정권을 강화하는 ‘주민자치’도 보이지 않는다. 거대 양당의 기초의원 독식을 가능하게 하는 선거구 획정 농단도 있었다.

지방선거가 정부·여당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을 띨 수밖에 없지만, 지역자치 이슈를 다 덮어버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자유한국당은 25일 “나라를 통째로 넘기시겠습니까”를 선거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문재인 정부 1년 만에 행정·사법·언론·교육 등 사회의 모든 분야가 국가사회주의로 넘어가고 있다”며 문재인 정권 심판론을 부각하고 있다. 아예 지방선거를 이념대결장으로 삼겠다는 노골적인 선언이 아닐 수 없다.

남북정상회담이 중요한 의제이기는 하지만 지방선거의 취지 또한 무시되어서는 안된다. 후보자와 정당들은 주민의 삶과 지역 이슈를 정책과 공약으로 만들어 경쟁해야 한다. 유권자들도 누가 제대로 동네 공약을 제시하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권자가 직접 나서 ‘나의 문제’를 결정하는 것이 지방자치다.

지방자치선거가 실시된 지 올해로 23년째다. 주민생활 개선과 특색 있는 지역발전, 지방행정 개혁 측면에서 성과를 거두었지만 진정한 풀뿌리민주주의와 거리가 멀다는 것이 이번 선거로 확인되고 있다. 모든 문제를 중앙으로 수렴하게 하는 제도도 개선해야 한다. 특히 특정 지역의 이익을 표방하는 정당의 출현을 근본적으로 막는 현행 정당법 개정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말로만 지방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고 할 때는 지났다. 정치권과 유권자 모두 다시 한번 지방자치에 대한 인식을 가다듬고 이번 선거를 새로이 마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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