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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해산심판의 공개변론 절차가 마무리됐다. 헌법재판관들의 비공개 토론인 평의가 끝나면 선고만 남겨두게 된다. 우리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치적 평가와 별개로, 해산심판 청구는 부적절하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가 청구를 철회하지 않은 이상, 이제는 헌재가 신중하고 엄정하게 판단하는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을 비롯한 보수진영에서 “연내 선고”를 압박하고 있으나 흔들려선 안될 것이다.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은 한 정당의 운명을 가름하는 차원을 넘어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와도 직결되는 까닭이다.

정당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헌법 제8조 2항)하는 조직이다. 따라서 그 존립과 해산 또한 선거를 통해 주권자가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유럽평의회 자문기관이자 한국도 회원국인 ‘베니스위원회(법을 통한 민주주의 유럽위원회)’는 정당해산과 관련한 지침을 채택한 바 있다. 국제적 권위를 인정받는 이 지침에 따르면, 정당해산은 민주적 헌법질서 전복을 위해 폭력을 사용하거나 폭력 사용을 주장하는 정당에만 극히 예외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이 경우에도 구성원의 개별적 행위에 대해 전체 정당에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또한 덜 과격한 조치로 위험을 예방할 수 있는 경우 해산해선 안된다. 한마디로 정당해산은 ‘최후의 수단’이라는 게 요체다.

황교안 법무장관과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25일 청구인과 피청구인으로 헌법재판소의 정당해산심판 마지막 공개변론에 참석한 가운데 헌법재판관들이 입장해 재판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출처 : 경향DB)


정부가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을 청구한 직접적 계기는 이석기 의원 등의 내란음모 사건이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 법무부 주장은 대부분 무너졌다. 법무부는 통합진보당이 북한의 대남혁명론을 따른다며 그 근거로 이 의원이 관여했다는 RO(혁명조직)의 활동을 들었다. 하지만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은 내란음모 혐의에 무죄를 선고하고 RO의 실체도 인정하지 않았다. 법원이 유죄로 인정한 내란선동 혐의는 개인적·우발적 행위이지, 정당 전체의 문제로 볼 수 없다는 게 법조계의 다수 견해다. 결국 정부의 심판 청구는 정당활동 자유를 보장한 헌법정신과 국제사회의 공인된 기준 모두에 어긋나는 것으로 봐야 한다.

지난 20일 서울북부지법에선 전두환 정권 시절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등 ‘혁명서적’을 읽었다는 이유로 옥살이를 한 사람이 32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사법부가 불법 감금과 가혹행위를 눈감아 고통당한 피고인에게 사법부의 일원으로서 깊이 사과드린다”고 했다. 헌재가 훗날 이러한 사죄를 하는 일이 없도록 현명한 판단을 내리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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