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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어제 미국 대통령으로는 24년 만에 한국 국회에서 연설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에서 굳건한 한·미동맹을 재확인하면서 6·25 이후 남북한이 걸어온 길을 극적으로 대비했다. 남한의 정치·경제적 성장을 극찬한 반면 북한에 대해서는 “지옥” “감옥국가”라며 맹비난했다. 북핵에 대해서는 “김정은 당신을 안전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체제를 심각한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고 말했다. 또 “미국과 동맹국이 위협받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면서 “미국을 시험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중국을 지목하며 더 크고 강한 대북 압박과 제재를 주문하고 힘을 통한 평화 유지를 강조하기도 했다.

트럼프 국회 연설의 대북 발언 수위는 문재인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 발언에 비해 높다. 한국에서 하고 싶었던 말을 연설에서 다 쏟아낸 듯싶다. 연설만 놓고 보면 트럼프가 대북 강경 기조로 돌아선 것 아니냐고 의심할 법하다. 보수야당들은 북한에 강력한 경고메시지를 보낸 연설이라며 환영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8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 이후 24년 만에 미국 대통령으로서 국회 연설을 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애초 트럼프 대통령의 국회 연설은 상대 없이 혼자서 진행하기 때문에 대북 강성발언이 나올 수 있다는 관측이 우세했다. 예상대로 트럼프는 억압과 경제적 궁핍으로 고통받는 북한 주민의 생활상을 일일이 열거하며 신랄하게 비판하는 데 연설의 대부분을 할애했다. 남한에 대해 “사람들이 스스로의 삶을 꾸려나가고 자유와 정의, 문명과 성취라는 미래를 선택했다”고 평가한 반면 북한에 대해서는 “부패한 지도자가 압제와 파시즘, 탄압이라는 기치 아래 자국민을 감옥에 넣었다”고 지적했다. 번영하는 한국의 존재 자체가 북한 독재체제의 생존을 위협한다고도 했다. 트럼프는 또한 “북한 김정은에게 직접 전할 메시지가 있어 왔다”면서 “당신이 획득하고 있는 무기는 당신을 안전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체제를 심각한 위협에 빠뜨리고 당신이 직면할 위협을 증가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부정적인 대북 인식은 새로운 게 아니다. 과거 그는 북한 김정은 정권에 대해 이보다 훨씬 더 심한 용어를 구사하며 비판해왔다. 북한 김정은 정권의 열악한 인권과 독재, 핵·미사일 위협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관건은 이런 북한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트럼프가 “우리는 북한이 올바른 선택을 할 경우 더 나은 미래를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힌 것은 주목된다. 비록 탄도미사일 개발중단과 완전하고 검증가능한 총체적 비핵화를 전제로 했지만 북·미관계 개선이나 대북 지원을 시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북한에 대해 부정적 언급만 한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메시지를 함께 보내며 나름대로 균형을 갖추려고 노력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제 한·미 정상회담 후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북·미 직접 대화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모종의 움직임이 있다”고 대답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트럼프의 발언 하나로 미국의 대북 기조가 바뀔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과잉 해석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북핵 문제에서는 조그만 단서라도 놓치지 않고 포착해 기회로 활용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이제 한국 정부는 트럼프 행정부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길로 가도록 이끌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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