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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가 유엔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규약위원회(사회권위원회)에 낸 의견서에서, 정부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과 관련해 이행 노력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회권위원회는 2017년 한국 정부에 ‘기업과 인권’ ‘차별금지법’ ‘노조 할 권리’ 등 3개 분야 권고안을 제시했고, 법무부는 후속조치 관련 보고서를 지난 4월 제출했다. 인권위 의견서는 사회권위원회 요청으로 제출됐다.

인권위는 국가기구이지만 입법·행정·사법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인권 보호·향상과 관련한 업무를 독립적으로 수행한다. 정부와 국회가 ‘학습된 무기력’에 빠져 포괄적 차별금지법 입법 책임을 방기하는 가운데 인권위가 쓴소리를 낸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인권위는 의견서에서 “최근 한국 사회는 여성, 이주민·난민, 성소수자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표현이 강화되고 조직화되는 등 혐오·차별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면서 “그럼에도 정부는 사회권위원회가 권고한 ‘포괄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구체적 계획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노무현 정부 당시인 2006년 인권위의 제정 권고 이후 2007년 법안이 입법예고됐으나 보수 개신교계 등이 ‘성적 지향’ 항목 등을 이유로 반발하며 제정이 무산됐다. 이후에도 몇 차례 법안이 발의됐으나 모두 폐기·철회됐다. 더욱 심각한 것은 20대 국회와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정부입법안이든 의원입법안이든 단 한 건도 발의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사이 5·18민주화운동 유공자와 세월호 참사 유가족까지 조롱 대상이 되는 부끄러운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헌법 제11조는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세계인권선언 제1조는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과 권리에 있어 평등하다’고 밝히고 있다. 헌법과 세계인권선언의 차별금지 정신을 저버리는 일부의 반인권적 주장과 행태를 방기하는 정부의 무책임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적 합의를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포괄적 차별금지법 입법을 계속 미룬다면, 그사이 상처받고 피해 입는 이들만 늘어나게 된다. 차별과 불평등에 대한 분노가 곳곳에서 분출하고 있다. 정부와 국회가 시민의 분노에 응답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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