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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이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선언과 남북군사합의서를 비준한 것을 ‘초헌법적 행위’라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24일 긴급기자회견을 열어 “판문점선언이 아직 국회 비준동의가 이뤄지지 않은 마당에 평양공동선언과 남북군사합의서는 국회 비준동의가 필요없다는 건 법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법원에 두 합의서의 효력을 정지시켜 달라는 가처분신청을 냈다.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계획도 밝혔다. 이에 청와대는 “국회 동의가 없는 군사합의서 비준이 위헌이라는 주장은 법리관계를 오인한 것으로, 그 자체가 위헌적 발상”이라고 반박했다. 격화하는 남남갈등에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왼쪽에서 두번째)가 24일 문재인 대통령이 전날 비준한 ‘평양공동선언과 남북 군사분야 합의서’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서를 법원에 제출하기 앞서 국회 기자회견에서 같은 당 곽상도·최교일·임이자 의원(왼쪽부터)과 함께 신청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권호욱 기자

남북관계는 법률만으로 평가·재단할 수 없는 영역이다. 때로는 법률의 한계를 벗어난 담대한 접근으로 새 지평을 열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남북 간 합의를 법리 싸움으로 몰고 가려는 한국당의 태도는 지극히 유감스럽다. 한국당은 헌법 60조(국회는 안전보장에 관한 조약,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또는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의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를 근거로 평양선언도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청와대가 밝힌 것처럼 북한과의 합의는 일반적인 ‘국가 간의 조약’으로 보기 어렵다.

헌재와 대법원이 모두 남북합의서를 한민족 공동체 내부의 특수 관계를 바탕으로 한 당국 간의 합의로 보고 헌법상 조약 규정을 적용하지 않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특수성을 무시하고 남북합의서를 헌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법리 오인이자 현실을 무시한 처사이다. 더욱 유감스러운 것은 판문점선언 국회 비준동의에 대한 한국당의 자가당착적 태도이다. 판문점선언을 꼼꼼히 따져보고 비준하겠다는 자세가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통과시키지 않겠다는 뜻이 강하다. 이런 식이라면 가처분신청과 권한쟁의심판에 대해 법원과 헌재가 한국당과 다른 판단을 내릴 경우 그 역시 승복하지 않을 게 뻔하다.

한국당은 문 대통령이 북한에 퍼주기만 한다는 의심과 낡은 대북관부터 버려야 한다. 판문점선언을 막아서기만 할 게 아니라 국회에서 제대로 심의해 비준동의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합리성을 보여야 한다. 이런 식으로 가다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종전이 선언되면 한국당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 문 대통령이 야당 대표들을 초청해 판문점선언 비준에 협조를 요청할 것이라고 한다. 청와대는 북한과 미국을 설득하는 노력만큼이나 야당 설득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내부 지지 없이는 결코 외치에 성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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