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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올 줄은 알았다. 정치권의 ‘통합론’ 바람 말이다. 이번엔 보수다. 싸늘하게 추우니 일단 뭉치자고 한다. 총선까지 1년6개월 남은 시점이다. 숨이 턱까지 차야 뭐가 되어도 되는 게 이 판 생리니, 일러도 한참 이르다. 그만큼 마음이 급하다는 방증일 터다.

통합 자체는 실상 중요치 않다. 그 자체가 목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민심이 궁금해하는 것은 ‘보수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이다. 더 콕 집으면 ‘보수가 집권하면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일 것이다. 그 답을 내지 못하면 어떤 시도도 무용하다. 이는 한국보수가 몰린 막다른 길을 이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보수의 이미지는 ‘반지성’이다. 낡은 특권에 연연하는 꼰대적 태도가 한 축이고, 드글드글한 사적 욕망과 아스팔트 보수의 폭력성이 다른 축이다. 무지·부패·폭력성이 이미지의 전부인 꼴이다. 한국보수가 한번도 책임 있는 ‘정치담론’을 낸 적이 없음을 감안하면 당연한 결과다. ‘통일 대박’을 외치다 색깔론을 꺼내고, 경제민주화를 이야기하다 ‘복지 망국’이라고 하는 게 그들의 정치였다. ‘희생·헌신·책임’과 때로 애국이 포함되는 보수 가치를 실천한 ‘진짜 보수’는 존재치 않았다.

일부 보수들은 말할 것이다. 그들의 정치담론은 성장·산업화·자유라고 말이다. 하지만 모두 구시대 유물처럼 들린다. 성장은 기본이다. 지금 요구되는 건 ‘어떤 성장’이고, 내 삶과 연관된 성장이다. 여권의 ‘소득주도 성장’이 당장은 성공적이지 못함에도 기대를 받는 건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자유도 더 일관되고 명료해야 한다. 지금까지 보수의 자유란 ‘재산권의 자유’에 불과했다. 신체·사상 등 인간의 근원적 자유를 부정한 전력마저 있다. 지금은 정치·경제·사회적 자유 속에서 자신의 선택에 대해 아주 작은 차별도 받지 않을 자유가 쟁점이다.

가치는 세력을 통해 힘을 발휘하는 게 아니다. 선명함과 호소력이 무기다. 하지만 지금 보수엔 그저 닥치는 대로 끌어모아 탄핵 이전으로 복귀하려는 욕망만 있다.

내용 없는 끼리끼리의 통합론은 ‘헤쳐모여식 미봉’으로 그칠 것이다. 늘 그랬듯 선거용 기술로 말이다. 하지만 이번엔 그마저 성공할 것 같지 않다고 보수들도 느낀다. “보수는 지금 초상집이다. 친이·친박이 피 터지게 싸우는 동안 일관된 정치 행보를 한 사람도 없다. 전망이 남아 있지 않다”(야권 한 인사)는 ‘패배주의’만 가득하다.

일각의 ‘공화주의’ 논의들은 진전일 수 있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시민들이 열망하는 공화의 내용을 추출하고 있는지는 의문스럽다. 기껏 마련된 토론회에서 김무성 의원은 “문재인 정부의 좌파사회주의 포퓰리즘 극복을 위해 공화주의 정신을 추구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공공선에 대한 헌신, 시민의 참여, 공직의 사회적 책임’이 본질인 공화를 문재인 정부 견제로 협소화한 것이다.

자유한국당 한 중진 의원은 “지금 이 당에 오는 사람들은 좋은 재원일 수가 없다. 시민들 사이에서 새로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시민들을 끌어당길 진짜 보수라면 다음의 6가지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보수가 생각하는 지금의 경제적 정의(正義)는 무엇인가. 선택의 자유가 우선인가, 격차 해소인가. 이는 필연적으로 양극화가 개인 선택의 결과일 뿐인지, 국가·사회적 제도의 미비인지를 답해야 하는 일이 될 것이다.

한국사회의 경제적 부정의를 인정한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여전히 ‘성장’인가. 그럼 보수의 ‘성장동력’은 뭔가. 재벌의 투자인가.

보수가 제시하는 한반도 미래는 무엇인가. 여전히 미국 옆에만 나란히 서면 되는 것인가. 이는 한반도 평화와 한·미동맹 중 어느 것이 우선적 원칙인지를 묻는 것일 수 있다.

‘박근혜, 태극기 부대, 특권의식’으로 상징되는 보수의 시대착오들과는 결별할 준비는 되어 있는가. “촛불은 혁명이고 태극기는 왜 부대인가”(전원책) 같은 항변을 보면 참 기대난망으로도 보인다.

보수가 생각하는 차별 없는 사회의 비전은 무엇인가. 성소수자 등 그들이 만들거나 동조해온 혐오에 대해 사과할 뜻은 있는가.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집약한 ‘보수의 정치 이념, 국정 철학은 무엇인가’에 답해야 한다.

한국정치의 비극성은 그 비주체성과 수동성에 있다. ‘자신의 정치’가 아닌 ‘남의 정치’에서 정치적 수단을 찾는다. 흔히 반사이익의 정치라고 한다. 자신의 가치를 펼치는 ‘연설의 정치’는 실종되고, 상대를 향해 말의 칼을 세우는 ‘논평의 정치’만 횡행해온 이유다.

보수가 이들 질문에 답하는 것은 현재와 미래 한국사회에 대한 그들의 의무다. 현대 정치철학의 핵심인 ‘복지, 자유, 미덕(공동체)’을 3요소로 한 보수의 정의(正義)를 지금 이야기해야 할 때다. 통합이 아니다.

<김광호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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