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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시작된 인사청문회는 한국 사회 기득권층이 얼마나 공정과 도덕의 ‘밖’에서 살았는지를 시민들에게 생생히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정권마다 숱한 인사청문회가 실시되었지만, 도덕성에 하자가 없는 고위공직 후보자는 ‘천연기념물’ 같은 존재였다. 오죽하면 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 위장전입, 탈세, 논문표절이 고위공직 후보자의 ‘5대 필수과목’으로 지목되는 희극이 벌어졌을까 싶다. 곧잘 ‘의혹백화점’을 방불케 하는 역대 인사청문회에서는 ‘구린’ 후보자들의 해명 과정에서 갖은 황당 어록이 탄생했다.

인사청문회 도입 이래 첫 낙마자는 2002년 장상 국무총리 후보자다. 장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부동산 투기용 위장전입 의혹에 대해 “시모가 한 일이라 나는 몰랐다”거나 “재산 문제는 모두 시모가 처리했다”고 ‘시어머니’ 답변을 했다가 혼쭐이 났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 후보자가 23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물을 마시면서 의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권호욱 기자

인사청문회의 기막힌 어록은 인사참사가 빚어진 이명박 정부 조각 때 양산됐다. 박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는 절대농지 투기 의혹에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할 뿐 투기와는 상관없다”고 했다가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았다. 이춘호 여성부 장관 후보자는 “서초동 오피스텔은 내가 유방암 검사에서 아니라는 결과가 나오자, 남편이 감사하다고 기념으로 사준 것”이라고 답변, 서민들 억장이 무너지게 했다. 2009년에는 백용호 국세청장 후보자가 등장했다. ‘집부자’였던 백 후보자는 “책을 보관할 장소가 없어서 (강남) 오피스텔을 구입했다”고 말해 질책이 빗발쳤다.

인사청문회 어록(?)이 또 하나 등장했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 후보자는 엊그제 인사청문회에서 만 2살 손자가 보유한 예금 2200만원의 출처를 묻는 질문에 “저와 직계가족이 차비 같은 걸 준 걸 모은 것 같다”고 해명했다. “2살이 무슨 차를 타냐” “무슨 이재용 아들도 아니고”라는 힐난이 뒤따랐다. 2년에 걸쳐 차비 명목이든, 세뱃돈을 모은 것이든 두 살 손자의 ‘2200만원 통장’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수 있는 그 감수성에 아연할 따름이다. 조 후보자도 결국엔 청문보고서 채택 여부와 상관없이 임명은 될 수 있겠지만, ‘차비로 모은’ 두 살 손자의 2200만원은 그 유치찬란한 인사청문회 어록 열전에 길이 남게 됐다.

<양권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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