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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가 피의사실 공표를 막기 위해 ‘인권보호수사공보 준칙’을 없애고 대신 ‘형사사건공개금지 규정’을 훈령으로 제정키로 했다. 수사기관은 형사사건의 범죄사실·소환 일정 등을 기소 전까지 원칙적으로 언론 등에 공개할 수 없고, 피의자를 언론 앞에 세우는 ‘포토라인’ 관행도 없애겠다는 것이다. 피의사실을 공개한 검사·수사관에 대한 처벌조항도 신설키로 했다. 이는 무죄추정 원칙을 존중하고, 피의자 인권과 개인정보 등 사생활을 엄격히 보호하겠다는 취지로, 당연한 조치다.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 논란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검찰은 통상 대검기획관 또는 지검차장 브리핑 등을 통해 수사 내용을 언론에 알렸고, 언론은 알권리 차원에서 이를 보도해왔다. 검찰이 특정 언론사에 수사 내용을 흘리는 사례도 빈번했다. 이로 인해 피의사실 공표를 금지한 형법 제126조는 무력화됐고, 여론재판에 내몰린 피의자 인격은 무참히 짓밟히기 일쑤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몬 ‘논두렁시계 사건’이다. 이후 피의자 인권보호를 위해 만든 것이 수사공보준칙이다.

하지만 이 준칙은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다. 준칙이 제정된 2010년 이후 피의사실 공표로 수사기관에 접수된 사건은 293건에 달했다. 그러나 이 중 단 한 건도 기소되지 않았다. 이를 감안하면 법무부가 훈령을 제정하겠다는 취지는 이해가 된다. 또한 피의사실 공표 금지는 현재 누가 수사를 받고 있느냐에 구애받지 않고 준비되는 대로 시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럼에도 훈령의 시행 시기 등에 대해서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 검찰은 지금 조국 법무부 장관의 가족을 둘러싼 의혹들을 수사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 조 장관 본인이 수사대상이 되지 않으리란 법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법무부가 훈령을 시행할 경우 오해와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일각에선 형평의 문제도 제기한다. 이 정권 들어 진행된 적폐 수사 당시 검찰이 피의사실을 흘릴 때는 가만히 있다가 이제 와서 훈령을 제정하겠다는 것은 검찰 수사 압박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 장관 가족에 대한 검찰 수사가 끝난 뒤 훈령을 만든다면 오해도 벗고 ‘검찰개혁’도 힘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훈령 내용 역시 정교한 검토가 요구된다. 중대 범죄자나 공인에 대한 수사 내용의 공개는 국민 알권리 보장 측면에서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법원 판례도 충분한 증거와 무죄추정 원칙을 준수할 경우 피의사실 공표를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수사 내용 공개를 무조건 금지하게 되면 ‘밀실수사’ 등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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