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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시작한 조국 정국은 그가 장관이 된 후에도 끝날 줄을 모른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한국 사람들은 완벽하게 두 그룹으로 나누어졌다. 여러 사람이 많은 얘기를 보탰는데, 그중에서는 손학규가 한 얘기가 가장 기억에 오래 남는다. 조국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고 탄핵으로 물러난 사람들이 할 얘기는 아닌 것 같다는…. 깨소금 맛이었다. 하여간 이게 며칠 내에 진정될 일은 아닌 것 같다. 짧으면 이번 겨울, 길면 내년 총선까지 아주 오래갈 사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예전에는 자본주의를 상부구조와 하부구조로 설명했다. 하부구조는 생산력을 형성하는 경제이고, 법과 제도 혹은 윤리 같은 것들이 경제 위에 서 있는 상부구조라는 의미다. 이 얘기를 지나치게 하면 경제 결정론이라고 비판받았다. 마르크스의 사적 유물론의 핵심이 하부구조의 변화이지만, 그 핵심은 경제와 경제 아닌 것 사이의 관계다. 조국 사건을 보면서 나도 20대 이후로는 거의 써 본 적이 없는 이 단어가 문득 생각났다.

20대, 넓게 보면 10대와 30대까지 포함한 청년들의 분노는 하부구조에 관한 얘기다. 사회적 격차와 경제적 불평등, 그들의 불만에는 우리 시대를 형성하는 하부구조의 부조리가 영향을 미친다. 경제와 경제정책, 이런 것들이 대부분 하부구조에 속한 것이다. 반면 조국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얘기하는 “조국 외에는 사법 개혁의 적임자가 없다”는 말은, 전형적으로 상부구조 얘기다. 국가라는 기구 자체가 상부구조인데, 그중에서도 검찰 개혁은 상부구조의 일부분에 관한 얘기다. 청년들은 하부구조에서 불만이 생긴 것인데, 청와대를 비롯해 조국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상부구조의 변화에 대한 얘기를 하는 중이다. 당연히 서로 말이 겉돌고, 서로 통하지 않는다. 상부구조를 개혁하면 하부구조에 변화가 올까? 한쪽은 상부구조가 제일 중요하다고 하고, 다른 한쪽은 갸우뚱, 도무지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듯하다.

이 바벨탑의 대화 같은 얘기를 지켜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조국에 대해서 하던 얘기나 관심의 10만분의 1이라도 하부구조에 기울였다면, 벌써 우리나라가 살기 좋은 나라가 되지 않았을까? 엄청난 뉴스를 토해낸 조국 청문회와는 달리 하부구조에 속한 것, 특히 경제정책에 속한 것들은 뉴스 한번 타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힘들게 나간다고 해도, 사실 별 관심도 없어서 금방 묻힌다. 정말이지, 여당이든 야당이든, 하부구조에 속한 것들은 그다지 인기 좋은 이슈들이 아니다. 개혁? 상부구조의 개혁만 개혁인가? 우리가 바라는 진정한 개혁은 하부구조에서 불평등을 줄이고, 격차를 줄이는 것 아닌가? 문재인 정부 절반이 지나는 동안, 우리가 하부구조에 대해 논의한 게 뭐가 있는가? 농협 개혁 얘기를 했나, 한전 개혁 얘기를 했나, 하다 못해 맨날 금융 사기 터진다고 하면서 금융위와 금감원 개혁 논의를 했나? 

상부구조만 보다 보니까 맨날 ‘프레임’ 타령만 했다. 이 정권이 실패하기를 바라는 일부 종편은 그래도 된다. 공영방송도 똑같이 이쪽 프레임, 저쪽 프레임, 프레임 타령만 했다. 프레임을 이렇게 보든, 저렇게 보든 하부구조에서 발생하는 격차 현상이 사라지는 게 아니고, 교육에서 발생하는 경제 불평등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그게 이번에 터진 것 아닌가? 한국 자본주의의 성격이 점점 더 불평등한 것으로 변하고 있다. 상부구조를 아무리 개선한다고 해도, 이 하부구조의 양상에 변화를 주지 않으면 세습 자본주의 성격이 너무 강해진다. 적당히 살아도 밥은 먹고사는 경제로 가야지, 엄마가 죽어라고 대신 뛰어주어야 하는 하부구조, 이건 아니다.

제발 부탁이다. KBS와 MBC, 뭔가 하부구조에 대한 방송들 좀 만들어주시기 바라고, 신문들도 하부구조와 경제 얘기도 좀 다루어주시기를 바란다. 뒤를 돌아보면, 노무현 정권 때만 해도 공영방송에 경제 문제 같은 복잡하고 어려운 얘기를 다루고 싶어하는 PD나 작가들이 꽤 있었다. 보수정부 9년을 거치다 보니까, 이 논의의 인프라들이 다 부서지고 상실되었다. 하부구조를 그대로 둬도 보수정권은 상관없지만, 촛불 이후의 개혁파는 그렇게 하면 안된다. 프레임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기반인 경제가 장기적으로는 진짜 중요한 요소다. 클린턴도 그렇게 말했다. 

조국 사건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지만 이 국면이 영원히 가지는 않는다. 개인은 실수할 수 있다. 시스템은 그때 드러난 문제점을 뒤늦게라도 고쳐가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조·중·동 욕하고, 종편 욕해도 된다. 그렇지만 그들도 상부구조에만 관심 있지, 하부구조의 개혁에는 아무런 관심 없다. 정치 프레임 싸움에서 이긴다고 경제에서 이기는 것 아니다. KBS와 MBC 사장 두 분에게 각별히 부탁한다. 조국에 사용한 방송 분량과 에너지의 10만분의 1만 하부구조에 써주시라. 현 정부가 성공할 가능성이 아직은 남아있다. 종편 따라가지 마시라. 그리고 상부구조의 화려함과 뜨거움만 좇아가지 마시라. 하부구조의 공론장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게 청년들의 미래를 위해서 지금 해야 할 논의 아니겠는가? 우리가 조국에 대해서 논하던 열정의 10만분의 1만 하부구조에 써도, 한국이 정말 좋은 나라가 될 것 같다. 이제, 경제 얘기 좀 하자.

<우석훈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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