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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이 20일 의원연찬회를 열고 당이 추구할 새로운 가치와 이념적 좌표를 공개했다. “인적 청산보다는 새로운 보수가치 정립에 집중하겠다”고 다짐한 김병준 비상대책위 체제 출범 이후 한 달 만에 결과물을 제시한 것이다. 김선동 여의도연구원장은 연찬회에서 “가장 큰 핵심 가치로 자유와 민주를 걸기로 했다”고 천명했다. 그리고 혁신가치로는 ‘공정’과 ‘포용’을 내세웠다. 한국당의 환골탈태를 위해선 우선적으로 시대착오적 냉전 이데올로기, 개발독재에서 기원한 강자 위주의 정책, 수구 이념 등에 대한 청산과 단절이 요구되어왔다. 퇴행을 거듭해온 당의 정체성을 시대정신에 맞게 바꿔야 한다는 당위에서다. 하지만 이날 제시된 당의 새로운 가치와 좌표가 그에 부합하는지 의문이다. 자유, 민주, 공정, 포용 등은 이미 당의 강령에 충분히 반영되어 있다. 그럴싸하게 포장만 바꿔서 ‘가치 재정립’이라고 외쳐 봐야 울림이 있을 리 만무하다. 특히 공정과 포용이 그렇다. 한국당이 그간 공정과 사회적 약자 포용에 부합하는 정책을 편 기억이 없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어떻게 다르게 공정과 포용의 가치를 지탱할지, 구체적 비전을 내놓는 게 마땅하다. 기존의 것들에 적당히 분칠해서 내놓은 ‘새로운 가치’는 전혀 새롭게 다가오지 않는다.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이 20일 공무원 인재개발원에서 열린 연찬회에서 상의를 벗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북한에 대한 접근에서 선명해지는 이념적 좌표도 어정쩡하다. ‘안전한 평화’라는 애매한 표현을 동원, 본질적 문제를 우회했다. ‘한반도 평화’ 논의가 가히 혁명적 전환 국면에 들었는데도 아직껏 반북, 반공, 안보 제일 등 낡은 이념의 틀을 떨쳐 버리지 못한 결과다. 그러니 이날 연찬회에서도 “그간 당의 이념·가치가 문제였다는 데 동의할 수 없다”는 반론이 봇물 터졌을 터이다.

김병준 비대위의 한국당이 내놓은 새로운 가치와 좌표가 공명 없는 자기들만의 말잔치로 비치는 까닭은 분명하다. 개혁의 요체인 ‘인적 쇄신’이 전혀 수반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나도 바뀌지 않았는데, 새로운 가치 운운해 봐야 공허할 따름이다. 이날 연찬회에서 ‘자유한국당, 어떻게 변할 것인가’를 주제로 발제한 박상병 인하대 교수의 지적대로 “인적 혁신 없는 좌표 설정은 추상”일 뿐이다. 그는 “헌정사상 초유의 담대한 인적 혁신으로 구체제 종언을 고해야 한다”고 고언했다. 그렇다.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철저한 인적 쇄신, 한국당 혁신의 첩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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