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새누리당이 어제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4·11 총선 ‘돈 공천’ 파문의 당사자인 현기환 전 의원에 대해 제명을 확정했다. 현영희 의원 제명안도 추인했으나 그는 현역 신분이어서 의원총회에서 3분의 2 이상 동의를 얻어야 최종적으로 제명된다.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는데도 현 전 의원을 제명한 것은 대선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고 ‘박근혜 책임론’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새누리당이 수권정당의 자격을 입증하려면 돈 공천 문제에 단호하게 대처해야 함을 여러 차례 강조해왔다. 그 첫걸음은 철저한 진상조사이며, 이후 조사결과에 따라 연루된 인사들을 유력 대선주자인 박근혜 의원 주변에서 걸러내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새누리당은 그러나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당 진상조사위원회는 공전을 거듭하는데, 지도부는 현기환·현영희 두 사람을 제명하는 데만 매달렸다. 앞서 새누리당은 제수 성추행 의혹을 받은 김형태 의원과 논문 표절 논란에 휩싸인 문대성 의원을 탈당 형식으로 당에서 내쫓은 바 있다. 두 사람은 의원직을 버젓이 유지하고 있지만 새누리당은 소속 의원이 아니라며 나 몰라라 하고 있다. 현 전 의원 제명 역시 전형적인 ‘새누리당식 꼬리 자르기’의 재탕인 셈이다.


윤리위 출석한 현기환 전의원 (출처: 경향DB)


박근혜 의원은 어제 경선후보 합동연설회에서 돈 공천 파문과 관련해 “정치개혁을 위한 특단의 조치를 만들 것”이라며 “부패와 관련해서는 누구도 예외가 없을 것이고, 권력형 비리는 더 강력하게 처벌받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강도 높은 쇄신조치로 돈 공천 파문을 정면돌파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박 의원의 발언은 원칙적으로 옳다. 그러나 일의 선후가 바뀌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지금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돈 공천 의혹의 진상을 낱낱이 규명하고 관련자들을 단죄하는 것이다. 박 의원 본인이 총선을 지휘한 책임자로서 진솔한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함은 물론이다. 이러한 선행조치 없이 제도적 개혁 문제부터 들고 나온다면 공허한 책임회피론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돈 공천 의혹이 불거진 것은 법과 제도가 미비해서가 아니라, 특정인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사당화(私黨化) 탓임을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보름 전 돈 공천 파문이 터진 이후 새누리당 인사들은 입만 열면 ‘위기’를 언급하곤 했다. 하지만 파문에 대처하는 방식을 보고 있노라면 위기를 실감하는 것 같지 않다. 의혹이 불거진 이후 당 차원에서 나온 조치라고는 윤리위 회부, 탈당 권유, 제명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현기환·현영희 두 사람을 당에서 떼어놓는 데만 집중할 뿐 진상 규명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그렇지 않다면 당 차원의 진상조사위를 만들어놓고 당사자 한 번 부르지 못한 채 허송세월하겠는가. 새누리당은 “이번 사태를 개인(비리)의 문제로 푼다면 당이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의 경고를 그냥 흘려버리지 말아야 한다.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5/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