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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선수들의 메달 색깔은 다르지만 땀의 색깔은 모두 같다.” 김제동의 이 명언에 문득 질문이 하나 떠오른다. 그럼 메달 색깔이 달라지는 이유는 뭘까? 노력만으로 안되는 것이 승부의 세계다. 땀을 어떻게 흘리느냐가 중요하다. 성패는 노력의 양보다 그 질에 의해 결정난다. 이런 점에서 민주통합당 후보의 캠페인을 보면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모두 질적 전환을 모색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이대로 가면 민주당 후보로 누가 뽑히더라도 안철수 원장이나 박근혜 후보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어렵다. 더 강해져야 한다.


후보는 여럿이지만 사실 민주당 경선은 지금까지 3파전으로 진행됐다. 문재인 후보가 지지율에서 제법 앞서고, 손학규·김두관 후보가 결선투표에 진출할 2등을 놓고 각축을 벌이는 구도였다. 그런데 김두관 후보가 처음 예상했던 만큼의 기세를 보여주지 못하고 주춤하는 동안 손학규 후보에게 상당한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3파전이 2강 구도로 바뀔 조짐이 보이고 있는 셈이다. 처음 기대했던 역동적 3파전의 구도가 어렵다면 이제 엎치락뒤치락하는 2강 구도가 되느냐 여부가 흥행 포인트다. 이런 점에서 민주당 경선의 성패는 손학규 후보의 선전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손 후보의 상승세는 아직 미풍일 뿐이다. 민평련 투표에서의 1등이나, 민주당의 정체성을 이루는 햇볕정책의 설계자인 임동원 전 장관의 캠프 합류 등이 손학규 후보의 상승을 예감하게 한다. 그러나 아직은 그럴 수 있는 구도가 열렸다는 것일 뿐 본격화된 것은 아니다. 손 후보가 지금까지 하던 대로만 한다면 뚜렷한 변화를 일궈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실 선거 초반 캠페인을 내용적으로 주도한 것은 손 후보였다. 그는 ‘저녁이 있는 삶’이란 슬로건을 히트시켰고, 경선의 초반 쟁점을 주도하는 이니셔티브를 보여주었다. 문재인 후보가 친노라는 세력 기반, 부산·경남이라는 지역 기반을 바탕으로 ‘파워 플레이’를 펼친 반면 손 후보는 차분하게 정책을 제시하는 ‘콘텐츠 플레이’에 주력했다. 이쯤 되면 여론이 움직이는 것이 상례다. 그러나 손 후보의 경우엔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지지율 상승을 추동할 핵심집단이 없기 때문이다. 손 후보는 이 사실에 유념해야 한다.


백범 유족과 얘기하는 손학규전대표 (출처: 경향DB)

손 후보의 지지율이 움직이지 않는 다른 이유 중 하나는 그가 민주당 지지기반의 골간을 형성하는 호남과 20~30대에 제대로 소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손 후보에 대해 “난세를 떠안을 수 있을 것 같은 임팩트”가 부족해 “사람들의 마음을 쫙쫙 빨아들이는” 데 한계가 있다고 했다. 손 대표에 대한 호남의 정서는 그가 대표 시절 보여준 리더십에 다소 실망한 데다 대체로 이길 사람에게 전략적으로 힘을 몰아주는 ‘전략적 투표(strategic voting)’ 경향을 갖고 있어 지지율이 낮은 손 후보에게 관심을 가질 동인이 별로 없었다. 호남 여론이 적극 호응할 메시지도 없었다. 20~30대는 다른 세대보다 감성적 어필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런데 손 후보의 정체성은 젊음이나 신선함보다 안정감을 특징으로 한다. 즉응적 공감이 어렵다. 말하는 방식이나 풍모에서 손 후보는 20~30대가 열광할 스타일이 아니다. 외모는 부드럽고, 말투엔 모가 없고, 메시지엔 각이 없다. 이런 미스매치로는 변화를 만들어내기 어렵다.


민주당 본경선은 이미 시작됐다. 이제는 그야말로 진검승부다. 후보들이 집중해야 할 것은 일반 국민보다는 민주당 지지층과 경선 참여자들에게 먹히는 캠페인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타깃이 분명한 메시지와 정책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미국 선거의 불문율 중 하나는 예비선거에서는 당 지지층의 선호와 열망에 호응하고, 본선에서는 중도로 이동하라는 명제다. 후보들이 새겨볼 만한 말이다. 특히 손 후보의 경우 성급하게, 또 과도하게 언급해온 중도 담론의 메시지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


또 하나 후보들이 고민해야 할 대목은 민주당과 새누리당 간에 선명한 정책 쟁점이 형성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전선이 형성돼야 민주당도 살고, 민주당 후보도 산다. 그런데 이 전선은 정책의 문제라기보다 리더십의 문제다. 야심만만한 정책을 만들어서 툭 던진다고 해서 전선이 예각화되는 것은 아니다. 쟁점의 형성은 정책의 내용 문제라기보다는 그 정책을 어떻게 다루고, 어디에 방점을 찍고, 기동성 있게 차이를 드러내 보이는 노력, 즉 정치적 리더십의 문제다. 지금 야권엔 제대로 된 리더십은 없고 ‘골목대장’의 핏대만 눈에 띈다. 


손학규 후보가 2강 구도를 형성하려면 무엇보다 그냥 한 사람의 후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신 야권의 대응을 주도하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민주당의 변화와 야권의 재편을 추동하고, 야권이 새누리당과 차별되는 정책대안을 제시함으로써 보통사람의 눈에도 ‘쉽고 간명하게’ 와 닿는 전선을 만드는 데 앞장서야 한다. 그럼으로써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날카로운 대립각을 형성해야 한다. 손 후보도 그렇고 민주당 후보는 이것을 놓고 치열한 리더십 경쟁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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