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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화가 폴 고갱은 신문기자였던 아버지의 정치적 망명으로 페루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고갱의 젊은 시절 꿈은 배를 타고 세계일주 항해에 나서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는 견습 도선사(導船士)로 일하며 상선을 타고 라틴 아메리카와 북극의 바다를 떠돌았다. 모친의 부고를 듣고 파리로 돌아와 35세 때 늦깎이 전업화가가 된 고갱은 서인도제도 마르티니크 섬, 남태평양의 타히티 섬 등으로 옮겨다니며 그림을 그렸다. 고갱이 화가가 된 이후 방랑하는 삶을 살게 된 것은 견습 도선사로 일했던 경험이 큰 영향을 미쳤다.
도선사는 선박이 항구에 안전하게 드나들 수 있도록 안내하는 전문직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에겐 낯선 직종이다. 수년 전 한 해군 장교가 114 안내원에게 도선사협회를 연결해달라고 했더니 서울 우이동에 있는 사찰인 도선사의 전화번호를 알려줬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한국고용정보원이 27일 공개한 ‘직업만족도 조사’에서 도선사가 판사에 이어 2위에 올랐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때도 시민들의 궁금증을 유발했다.
세월호 사고 미수습자 가족들이 27일 전남 진도 동거차도 앞바다의 반잠수식 선박에서 유류를 배출 중인 세월호를 바라보고 있다. 이준헌 기자
도선사는 선박이나 항구의 ‘눈’과 같은 존재다. 낯선 항구의 사정을 잘 모르는 외국 선박들은 도선사의 도움 없이 입·출항을 할 수 없다.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도 산타마리아호에는 지안 데 라 코사라는 도선사가 타고 있었다. 세계 최강 스페인 함대가 1588년 영국 함대에 패한 것은 도선사가 없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바닷속 지형과 뱃길을 훤히 알고 있어야 하는 도선사 면허 취득 조건은 까다롭다. 면허시험에 응시하려면 6000t급 이상 선박의 선장으로 5년 이상 승선한 경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국내 250여명의 도선사들은 대부분 항해사로 10년, 선장으로 10년간 오대양을 누빈 경력을 갖고 있다. 평균 연봉은 1억2000만원가량이며, 경력에 따라 5억원이 넘기도 한다.
3년 만에 인양된 세월호를 싣고 이르면 30일 목포신항으로 출발하는 반잠수식 선박 화이트말린호에도 도선사가 탑승한다. 암초를 피하고, 시속 6~12㎞의 물살을 헤쳐 가려면 베테랑 도선사의 인도가 필수적이다. 도선사의 인도로 화이트말린호가 목포신항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박구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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