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기업에서 정리해고를 하려면 온갖 노력을 기울였는데도 도저히 어쩔 수 없는 ‘긴박하고도 불가피한 경영상의 사유’가 있어야 한다. 또한 정리해고를 하더라도 회사 측은 노동자들과 고통을 공유하려는 진정성과 헌신성을 보여야 한다. 그런데도 많은 사업주들은 정리해고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면서 자신의 경영실패에 따르는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기 일쑤였다. 정리해고의 또 다른 문제점은 일단 실행되면 이를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 지도위원의 처절한 309일 고공농성과 ‘희망버스’ 시민들의 눈물겨운 연대, 여야 정치권의 압박 등이 한데 어우러진 다음에야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가 해결된 일이 바로 그것이다. 


KEC 노사 갈등 일지 (경향신문DB)



그런 점에서 경북 구미의 반도체업체인 KEC가 노동자 75명의 정리해고를 전면 철회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KEC는 지난 2월 ‘경영상의 위기’를 이유로 75명을 정리해고했고, 이 때문에 2010년 임금단체협상 결렬 이후 노조파업 등으로 갈등을 겪고 있던 노사 관계는 더욱 악화됐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이번 조처는 반목과 대결로 치닫던 노사 관계에 새로운 전기를 제공한 셈이다. 정리해고를 단행한 뒤 임원들의 연봉을 올리는 등의 도덕적 해이와 경영진의 비리 의혹으로 비난을 받고 있던 회사 측이 내키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해고 철회를 했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정리해고를 되돌린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회사 측의 결정이 평가절하돼서는 안된다. 


임금이나 근무조건을 둘러싸고 갈등의 소지가 남아 있다지만 노사 양측이 서로를 동반자로 인정하고, 대화와 타협의 기조를 유지한다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본다. 회사 측은 이제부터라도 파업복귀 노조원들에게 체벌이 포함된 ‘정신순화교육’을 실시하거나, 노조를 말살하기 위해 어용노조를 설립하는 등 기존의 반인권적 시대착오적 행태와 결별해야 한다. 이러한 것들은 헌법과 법률에 보장된 노조활동을 억압하는 동시에 최소한의 상식과 도덕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노조 또한 어렵사리 지펴진 상생과 화해의 불씨를 계속 지켜나갈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해야 한다. 과거의 묵은 감정에 지나치게 연연하다가 현재와 미래의 틀을 깨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KEC의 정리해고 철회가 전국의 많은 사업장에서도 기업주와 노동자들이 상대방의 처지를 존중하는 노사상생과 산업평화의 계기로 자리 잡게 되기를 기대한다.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