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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신|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대법관 임명 시즌이다. 후보자들에게 확인할 것이 있다. 판사들은 대법관이든 하급심이든 모두 평등하다고 실제로 믿는지?


영화 <부러진 화살>을 보고 ‘재판이 저 모양이니 판사들 확실히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지금 판사들에 대한 인사관리 권한은 대법원장을 중심으로 한 법원 고위층에게 주어진다. 영화 속의 재판은 법원 고위층이 하급심 판사에게 충분한 자유와 독립성을 인정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김명호 교수를 엄벌하라는 법원 고위층의 ‘오더’가 내려온 이상 증거신청들을 거부하더라도 구속만기 전에 재판을 빨리 종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서기호 판사가 마지막 재판을 마치고 집무실에 돌아와 법복을 벗고 있다. (경향신문DB)



서기호 판사의 재임용 탈락은 하급심 판사들이 법원 고위층을 상대로 독립성을 쟁취하기 위해 지난 4년간 벌였던 싸움의 정점에 있다. 박재영 판사가 야간집회 금지조항에 대해 위헌제청 신청을 하자 법원 고위층의 일원인 신영철 법원장은 위헌제청을 무시하고 촛불시민들에게 유죄판결을 내릴 것을 ‘부하’ 판사들에게 요구했고, 이에 대해 서기호를 포함한 전국의 ‘부하’ 판사들이 재판독립을 위해 조직적으로 저항했다. 곧이어 <PD수첩> 광우병 보도 1심 무죄판결이 나오자, 한나라당은 법관들에 대한 통제를 더 엄격히 해야 한다며 2010년 법원조직법을 개정했다. 


개정 이전에는 판사 근무평정은 재임용 심사에서 고려되지 않는다는 암묵적 합의가 있었다. 그런데 개정법에서는 고려되도록 명시한 것이다. 물론 당시 법원 고위층은 법관인사위원회의 외부인사 참여가 사법부 독립을 침해한다면서 반대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법원 고위층의 판사에 대한 통제를 더욱 심화시킨 법개정이었던 것이다. 그 이후 취임한 양승태 대법원장은 개정법을 적용한 첫번째 재임용심사에서 서기호를 탈락시킨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한나라당의 법개정 목표였던 좌파 판사 척결의 성공 사례였고 앞으로 모든 하급심 판사들의 ‘군기’를 잡는 본보기였다. 


사법부의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존중해 주는 이유는 국민이 다수결이 아닌 합리성에 기초한 공정한 재판을 받을 헌법적 권리 때문이다. 그런데 국민은 사법부로부터 재판을 받지 않는다. 개별 판사로부터 재판을 받는다. 사법부라는 집단의 독립은 중요하지 않다. 개별 판사의 독립성이 중요하다. 세계 헌법 어디에도 사법부의 독립은 없고 법관의 독립만이 있는 이유이다. 즉 판사들은 행정부나 입법부는 말할 것도 없지만 상급심 판사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한다. 상급심 판사는 하급심 판사들의 판결을 파기환송할 수 있을 뿐 하급심 판사들에 대한 인사권한을 가져서는 안 된다.


물론 지금의 근무평정은 법원장이 하고 있지만, 법원장은 실질적으로 법원 고위층으로부터 일선 법원에 ‘파견’나와서 하급심 판사들을 감시하는 자리이다. 결국 이들 법원장은 대법관이 되기 위해 법원 고위층의 입맛에 맞게 하급심 판사들을 감시하게 된다. 신영철 사태도 개인의 잘못이라기보다는 구조적 동기가 지배적이다. 그래서 법원장을 통한 법원 고위층의 통제로부터 평판사들을 해방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법개혁 목표이다.


판사들이 공권력을 제대로 감시하려면 모든 외부감시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감시자는 누가 감시할 것인가? 미국 주판사들처럼 직선제나 행정부 임명 후 신임투표도 검토할 수 있고, 미국 연방판사처럼 종신제 또는 독일처럼 평생법관제로 하되 의회가 인사권을 갖도록 할 수도 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처럼 판사들이 자신의 인사권자를 투표로 선출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들 제도의 공통점이면서 우리 제도에 결여되어 있는 것? 판결에 대한 파기환송권 외에는 모든 판사들은 직급과 심급에 관계없이 서로 평등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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