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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일 | 우리땅걷기 대표·문화사학자



1990년대 중반의 일이다. 전주의 옛 이름 바꾸기 작업을 하면서 전주 객사(客舍) 앞길인 ‘관통로’를 ‘객사길’로 바꾸려고 공청회를 연 적이 있다. 전주의 중심부에 자리 잡은 ‘객사’가 하나의 길 이름으로 만들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때 한 사람이 일어나 질문을 던졌다. “객사는 집을 나가서 죽는다는 객사(客死)와 발음이 같은데 어떻게 길 이름을 객사로 할 수 있습니까?” 


그의 말이 끝나자 “듣고보니 그렇네” 하면서 많은 사람이 반대해 결국 부결되고 말았다. 그 객사 뒤편 자그마한 길에 ‘객사길’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그 후로도 10여년의 세월이 흐른 뒤였다.


우리 역사 속에는 객사한 사람들이 꽤 많다. 방랑시인 김삿갓은 화순에서 객사했다. 조선 중기의 시인으로 기생인 홍랑과 애달픈 사랑을 나눈 최경창도 그 중 한 명이다. 경성 객관에서 최경창이 객사를 하자 홍랑은 그의 묘를 지키며 3년 시묘를 했다고 한다. 



(경향신문DB)



산을 좋아해서 산을 자주 오르는 사람은 산에서 죽는 것이 영광이고, 마라톤을 좋아하는 사람은 달리다가 죽는 것이 영광이다.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은 책을 읽다가 죽는 것이 영광이다. 그렇다면 길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인간은 걸을 수 있을 때까지만 존재한다.”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의 말이다. 걸음을 멈추는 순간 존재의 의미는 상실된다. 평생을 걸어다닌 사람들에게 최대의 영광은 이처럼 홀연히 길에서 임종을 맞는 객사일 것이다.


요즘 통계에 따르면 집에서 임종을 맞이하는 사람은 30%에 지나지 않고 병원, 즉 길에서 임종을 맞는 사람이 70%에 이른다고 한다. 집에 있다가도 임종이 임박하면 장례를 치르기 쉬운 병원으로 서둘러 옮긴다. 현진건의 소설 제목인 ‘술 권하는 사회’가 아니고 ‘객사 권하는 사회’가 된 것이다. 


“나는 쓰러져 죽을 때까지 자연의 길을 여행하겠다. 그리하여 내가 매일 들이마시던 대기 속으로 나의 마지막 호흡을 반환할 것이며, 나의 아버지가 씨를 얻고 어머니가 피를 얻고 유모가 우유를 얻었던 대지에 깊이 묻히리라….” 


아우렐리우스의 말이다. 나 역시 그런 영광을 누리고 싶다. “산다는 것은 떠돈다는 것이고, 쉰다는 것은 죽는다는 것이다.” 연산군 때의 풍류객인 용재 성현의 말이다. “봄누에는 죽음에 이르러서야 실뽑기를 마친다(春蠶致死絲方盡)”는 말도 있다. 그 말처럼 죽는 날까지 이 땅을 떠돌고 길에서 생을 마감하리란 게 지금의 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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