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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했다.” 25살이라는 청년 NGO 활동가가 작금의 대한민국 사회운동을 진단하면서 그리 말했다. 지난 7일에 있었던 어느 워크숍 자리에서였다.

왜 망했다는 것일까. 그는 현재의 사회운동이 ‘청년 착취’와 같은 새로운 갈등을 이론과 실천 과제의 항목에서 ‘삭제’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즉 방치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청년들을 기존의 사회운동에 필요한 인력 충원의 대상 정도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그래서 그는 청년들을 폐허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존재로 형상화하기도 했다.

필자를 포함한 워크숍 참석자의 대부분은 그 청년활동가보다 연장자였다. 486 혹은 586 세대의 활동가들이 많았다. 이들은 20대였던 1980년대에 반독재 민주화운동에 투신한 이후 3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회운동에 복무하고 있는 베테랑들이다. 이제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의 삶 한복판을 지나고 있으며 25살 청년 활동가에게는 아버지, 어머니뻘이기도 하다.

486 혹은 586 세대 활동가들은 부와 권력과 안락한 삶에 대한 욕망에 굴하지 않고 민주주의와 인권과 진보를 위해 살아왔다. 경제적 궁핍도 견뎌냈고 빨갱이 아니냐는 세상의 윽박지름과 따가운 눈총도 이겨냈다. 감옥행도 마다하지 않았다.

국회의원을 하려고 그리 사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도 못 들은 척했다. 철이 들지않아 그리 산다는 훈계조의 비난도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맞는 말이라고 받아넘겼다. 그리할 수 있었던 것은 운동가로서의 자부심과 자긍심 때문이었다. 가난하고 힘없다는 이유로 살 곳도, 일할 곳도, 심지어 목숨마저 빼앗긴 사람들을 위해 살아왔다고 믿기에 가질 수 있는 마음 말이다.

그런데 그런 이들의 운동에 대해 아들뻘인 청년 활동가가 망했다고 선언했다. 486 혹은 586 세대의 활동가들 중 많은 이들이 위기라고 생각하고 그리 말하기는 했다. 하지만 청년활동가는 위기라는 말조차 진부하고 한가하게 느껴진다고 일갈했다.

청년활동가가 밝고 명랑한(?) 표정과 목소리로 자신의 나이를 밝히며 발표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486 혹은 586 세대 활동가들의 표정은 마치 아들의 학예회 발표를 보러 온 학부모들 같았다. 따스한 눈빛과 흐뭇한 미소가 배어 있었다.

하지만 곧 그런 표정은 사라지고 지그시 눈을 감고 묵묵히 들으며 깊은 상념에 빠져들어야 했다. 지난 30여년의 세월과 삶의 여정을 떠올리기도 했을 것이고, 지금의 사회 현실과 운동의 처지를 짚어보기도 했을 것이다. ‘정말 망했나’ 자문하며 말이다.

4일 서울시청 1층에서 열린 ‘뉴딜 일자리 박람회’에서 시민들이 일자리 상담을 받고 있다. 서울시는 이번 박람회에서 청년마케터, 아동돌봄 도우미, 청각장애인 모니터링 요원 등 1397개의 일자리를 제공한다. (출처 : 경향DB)


필자는 청년활동가의 발제를 듣다 눈물이 슬며시 차 오르기도 했다. 나 자신의 무지와 무능과 관성에 마음이 아팠고 미안했고 부끄럽고 화가 나기도 했다.

청년 착취를 새로운 갈등으로 포착해내지도 못하고 ‘우리의 문제’로 만들어내지도 못한 무지와 무능에 대해서, 그리고 여-야 혹은 보수-진보라는 낡은 정치적 갈등에 매여 하나마나한 평론이나 해대고 있는 관성에 대해서 그러했다.

고맙기도 했다. 망했다는 언명이 복잡한 머릿속을 오히려 청명하게 만들어주었다. 마음을 비워주기도 했다. 이제 새로이 시작하는 일만 남았음을 알려주는 것이기에 그러했다. 이제 자그마한 것이라도 하나씩 하나씩 해가는 수밖에 없음을 알려주는 것이기에 그러했다.

또 고마운 것이 있었다. 그 청년활동가처럼 자신이 겪고 있는 삶의 고통에 기대어 세상의 변화를 열망하는 자, 그리고 낡은 갈등을 대체할 새로운 갈등의 확인을 소망하는 자, 그 확인을 위한 대화에 나선 자, 바로 그런 자가 사회운동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알려주었다는 것이다. “그래 당신 같은 활동가가 전면에 서서 이끌어야지”라는 혼잣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을 정도였다.

정치도 그렇지만, 사회운동도 시대의 새로운 변화에 조응하며 보다 좋은 세상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낡은 갈등을 새로운 갈등으로 대체하는 역량이 필요하다. 그래서 청년 세대든 486 혹은 586 세대든 그 역량을 보유하고 발휘할 수 있는 자가 사회운동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그런 이들을 발견하고 세워내는 것, 이것이 2015년 이후 대한민국 사회운동의 핵심 과제일 것이다.


김윤철 |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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