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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통해… 국민소득 4만달러의 대한민국 경제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1월12일,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밝힌 포부이다. 4만달러면 현재 환율로 연 4360만원, 월 소득 기준으로는 363만원가량이다. 그래, 이게 1인당 평균 소득이라면 지금보다는 좀 살 만한 세상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올해 최저임금은 시간당 5580원, 월 116만원 남짓이다. 지난해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결과 분석에 따르면,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노동자 수가 무려 209만명으로 전체 임금노동자의 11.4%에 달한다.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를 포함하면 500만명에 육박한다. 이런 임금수준으로 어떻게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로 간다는 말인가?

대학생들의 경우 연간 1000만원에 달하는 등록금을 벌려면 최저시급으로 1792시간을 일해야 한다. 1년 내내 밥도 안 먹고 교통비도 안 쓰고 죽어라 벌어야 등록금을 댄다는 얘기이다. 민주노총이 지난주 정기대의원대회를 열고 4월 총파업과 함께 주요 요구로 ‘최저임금 1만원’이라는 선명한 슬로건을 내걸었다. 최저임금 1만원이면 월 209만원. “월 200만원은 받아야 최소한의 삶을 누릴 수 있을 것 같다.” 길거리에서 설문조사를 해보면 거짓말처럼 똑같은 답을 듣게 된다.

그런데 최저임금심의위원회에 들어가면 최저임금 대폭 인상이 경제에 부담을 준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경총을 비롯한 사용자위원들인데, 최저임금이 오르면 영세 자영업자들과 중소 상공인들이 대거 망한다는 것이다. 수억원의 연봉을 받는 경총 위원들이 이런 얘기를 한다니, 말 그대로 고양이 쥐 생각하는 꼴이 아닐 수 없다.

실상은 어떠한가? 최저임금 인상과 무관하게 자영업자들은 몰락하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2013년에 발표한 ‘최근 자영업자 동향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에 신규로 창업한 이들의 85%가 2년 안에 폐업을 했다. 특히 음식점의 경우 95%의 폐업률을 보였다. “치킨과 피자를 사먹어줘야 할 분들이 그걸 팔고 있는 상황이다.” 골목마다 들어선 치킨집이 출혈경쟁을 하니 살아남는 이가 얼마나 될까? 그들 대부분이 직장생활하다가 희망퇴직·권고사직으로 밀려나온 50대들이다. 박근혜 정권이 이들을 위해 내놓은 정책은 “55세 이상 고령자에게 파견 무제한 허용”, 즉 비정규직으로 착취당할 자유이다.

이분들이 일할 반듯한 일자리가 있었다면 과연 창업에 뛰어들었을까? 최근 과장급 이상 1000명 안팎을 구조조정으로 내보낸 현대중공업이 위치한 울산 동구에선 자영업 프리미엄이 올라간다는 말이 나돈다. 이들이 퇴직하면 결국 또다시 전망이 불투명한 창업의 길로 간다는 얘기이다. “최저임금 1만원이 되면 내가 왜 위험천만한 창업을 합니까? 어디든 들어가서 일하는 게 낫지요.”

알바노조 회원들이 14일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최저임금 1만원 운동 과정에서 부과된 1500만원의 벌금에 대해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출처 : 경향DB)


최저임금이 1만원으로 오르면 기존 최저임금에 비해 추가로 징수되는 4대 보험료만 1인당 연간 100만원에 육박한다. 500만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최소한 5조원의 재원을 조달할 수 있다는 얘기이다. 근로소득세와 주민세, 그리고 소비 진작으로 늘어나는 부가가치세 등 국고 수입 또한 엄청난 규모에 달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연봉은 2억원이 넘는다. 연간 2000시간 노동을 기준으로 하면 시급이 무려 10만원이다. 같은 기준을 적용하면 국무총리의 시급은 8만원, 장관들은 6만원에 달한다. 모두들 관사에 승용차까지 지급되니 집값과 교통비 걱정도 없다. 더 쉬운 해고, 더 낮은 임금, 더 많은 비정규직 양산 정책을 만드시는 나리들, 최저임금부터 1만원으로 올려야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를 열 수 있지 않을까? 설날에 조카들한테 줄 세뱃돈도 좀 대폭 인상해보자.


오민규 | 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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