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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약자들이 서로 돕는 활동을 하겠다는데 국가기관이 돕거나 보태기는커녕 외려 걸림돌이 되는 일이 벌어졌다. 폭력과 혐오, 그리고 배제의 위험에 처해 있는 성소수자들을 위해 장학과 의료, 상담과 활동을 지원하겠다는 취지로 설립한 ‘비온뒤무지개재단’에 대한 이야기다.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성소수자들의 부모와 활동가들이 힘을 모아 이런 재단을 만들고 등록하려 하자 서울시와 국가가 돕기는커녕 1년이 넘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등록을 해주지 않고 있다고 한다.

서울시와 국가인권위원회, 그리고 법무부가 서로 자기 업무소관이 아니라고 난색을 표하며 다른 기관을 알아보라고 넘기거나 황당한 이유를 들었다. 첫 번째로 작년에 설립등록을 하러 갔을 때 서울시가 ‘미풍양속’을 근거로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미풍양속’이라니, 참 고전적이다. 난 미풍양속에 어긋난다고 하기에 재단에서 무슨 가족제도 해체와 같은 과격한 주장을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것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오히려 성소수자들을 위한 전문적인 심리상담소를 만들고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연구하는 활동가와 연구자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등 온통 권장해야 할 미풍양속뿐이었다. 도대체 이 재단이 하겠다는 일 중 어떤 것이 미풍양속에 어긋나는지 설명해주길 바란다.

지난 해 12월 서울시청 1층 로비에 성소수자들이 모여 '무지개 농성단'이란 이름으로 농성장 정비를 하고있다. (출처 : 경향DB)


법무부는 자신들은 ‘보편적인 인권’을 다루는 곳이라서 한쪽으로 치우친 인권을 다루는 곳은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했다고 한다. 인권에 대해 이런 황당한 소리는 처음 들어봤다. ‘인간’으로부터 배제된 사람들의 존엄을 보호하고 권장하기 위한 장치일 때 인권은 실질적인 힘을 가질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이 자신들의 삶에서 실제적으로 겪고 느끼는 구체적인 배제와 차별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그 말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인권은 비로소 보편적인 것이 된다. 이런 활동을 통해 이전에는 인권으로 인식되지 않던 것이 인권의 영역으로 들어옴으로써 인권은 더욱 풍성해지고 보편적인 것으로 나아간다.

이처럼 인권은 배제된 사람들의 활동을 통해 그 보편성을 ‘문제시’하는 과정을 거쳐 역설적으로 보편적인 것으로 확장되어 왔다. 따라서 이 인권의 보편성을 위해 국가가 해야 하는 일은 한편에서는 이미 확정된 인권의 항목들을 가지고 사회적 소수자들을 ‘보호’하는 일이고 다른 한편에선 인권을 ‘권장’하는 일이다. 인권의 권장 역시 두 축이다. 하나는 보다 많은 사람들과 영역에서 인권이 주요한 규범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피해자들과 소수자들, 그리고 연구자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권장’하여 아직 발견되지 않은 인권의 내용을 찾아내는 일이다. 이 과정을 통해 인권은 확장되며 좀 더 보편적인 것이 된다. 지금 무지개재단이 하겠다고 나선 일이 바로 인권을 권장하고 인권의 언어를 확장하여 그 보편성을 확장하겠다는 것이다. 두 손을 들고 환영해도 모자랄 판에 보편성을 근거로 부정적이라고 하니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미풍양속과 인권의 보편성이라는 이름으로 국가가 성소수자들의 쪽박을 걷어차는 동안 이들에게 손을 내민 것은 놀랍게도 쌍용자동차의 해고노동자였다. 자신들도 삶에 대한 절박한 마음으로 굴뚝 위로 올라간 쌍용자동차의 해고노동자인 이창근씨가 굴뚝 위에서 무지개재단에 후원가입을 했다고 한다. 재단의 활동가는 그의 가입소식을 문자로 받고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다고 했다.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소식’이었고 그래서 더욱 기쁘고 감사한 소식이었다. 굴뚝이 무지개를 잡고, 무지개가 굴뚝 옆에 뜬 것이다.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해고노동자와 성소수자 간의 거리, 이 거리를 뛰어넘어 손을 잡는 것이 ‘사회’를 만들어간다. 서울시와 국가인권위, 법무부는 굴뚝 밑으로 달려가서 사회를 만드는 미풍양속, 인권의 보편성이 뭔지를 좀 배우기 바란다.


엄기호 | 문화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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