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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은 참 무덥고 비도 많이 내렸다. 사람들이 만날 때마다 날씨에 대한 얘기가 빠지지 않는다. 이렇게 더워서 어디 살겠느냐는 것이다. 나는 이번 여름을 보내면서 뭔가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는데, 이번 더위가 예외적인 현상이 아닐 것 같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94년 여름 나는 군대에서 일병을 달고 있었는데 그해도 기록적인 폭염이었다. 내부반이 서쪽 건물 벽에 붙어 있어 지는 해의 열을 받아 밤새 후끈거려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다들 혀를 내둘렀지만 그걸 가지고 기후변화를 운운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올해 여름을 보내면서 사람들의 머리는 이 더위를 지구온난화와 긴밀하게 연결시키는 듯하다.

그만큼 지구온난화는 지난 십수 년간 조금씩 확실하게 진행되어 이제 피부로 인지할 수준까지 됐다는 이야기다. 내년에도 이런 더위가 올 확률이 매우 높다. 겨울은 어떤가. 제트기류가 약해져서 북극의 한풍이 한반도를 덮었던 지난겨울의 상황이 올해에도 재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름엔 지독하게 덥고 겨울엔 지독하게 춥다. 사계절이 완만하게 서로 바뀌며 순환하던 일은 까마득한 옛이야기가 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폭염이 계속되면서 지난 8월 20일 기준으로 전국 저수지의 저수율이 50% 아래로 떨어졌다. 충남에서 가장 낮은 저수율을 보인 공주시 중흥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정지윤 기자

인간은 환경에 잘 적응해왔다. 기후가 바뀌면 거기에 맞게 적응하면 된다. 군대에 제빙기를 넣어주고, 양봉하는 사람은 벌통 주변에 나무를 수십 주 더 심어 온도를 낮춰준다. 게릴라성 폭우와 폭염이 몰아치는 여름에는 야외에서 하는 행사를 대폭 줄여야 하고, 더위로부터 목숨의 위협까지 받고 있는 취약계층을 잘 살펴야 한다. 과일이나 농작물도 기후 변화에 맞게 바꿔서 심거나 물과 온도를 조절해주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에어컨 업체는 생산량을 늘리면 되고 정부는 전기료를 깎아주면 되고 정치인은 더위는 내가 해결하겠다고 공약하면 된다.

문제는 기후 변화가 인간이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다. 저명한 환경운동가 마크 라이너스에 따르면, 지구 온도가 2도 이상 상승하면 아마존 밀림이 붕괴한다고 한다. 전 세계에서 쓰는 산소 중 상당히 많은 양을 생산하는 이 거대 삼림이 황폐화되면 당장 어떤 일이 벌어질까? 대기 중으로 이산화탄소가 250PPM이나 추가로 배출된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지구를 감싸고 있는 이산화탄소의 막이 좀 더 두꺼워져서 온도가 1.5도 상승하게 된다. 이는 곧 지구 온도를 4도나 상승시키는 일로 이어지고 이 단계에 접어들면 시베리아의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탄소와 메탄이 우후죽순으로 배출되기 시작한다. 대기 중으로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더 늘어나 곧 5도 상승에 직면하게 된다. 이 정도가 되면 바다 심해에 저장되어 있는 메탄하이드레이트가 대기 중으로 나와 6도 상승에 이르는 대재앙이 발생한다. 이런 시나리오와 관련하여 인간이 컨트롤할 수 있는 지구의 온도 상승은 2도 상승이 마지노선이라는 게 환경론자들의 주장이다. 그 이상이 되면 임계점을 벗어나 인간의 손으로 막을 수 없는 연쇄반응이 시작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금성이 떠오른다. 요즘 밤하늘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별 금성은 사실 지옥성이다. 금성을 감싼 두꺼운 가스층으로 인해 온실효과가 극단적으로 진행돼 내부 온도가 무려 500도를 넘는다고 한다. 지구가 이런 환경으로 변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고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올해 여름은 지난해 여름보다 무려 5~6도나 더 덥지 않았던가. 최근에는 북극에서 절대, 네버, 앱솔루틀리 녹을 일이 없다는 코어 빙하에 금이 쩍 하고 갔다는 뉴스도 보도되지 않았던가. 이런 상황에서 기후에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당신은 너무 야속한 사람이다.

기후윤리학자인 가디너(Stephen M. Gardiner)는 기후 변화와 관련한 원인과 결과의 분산성, 행위자의 파편성, 제도의 불충분성 때문에 기후 변화를 좋은 쪽으로 돌리려는 노력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고 경고한다. 기후 앞에서 인간의 도덕성은 붕괴되어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개발도상국은 선진국에, 선진국은 개발도상국에 책임을 떠넘기기 바쁘다. 내가 참고 협조하면 그게 상대방을 도와주는 일이 되는 죄수의 딜레마 상황도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한 전 지구적 대응을 막고 있다.

출판인으로서 나는 사람들의 기후 감수성을 높여주고, 기후 판단을 도와줄 책들을 계속 펴내고자 한다. 올해 <폭염 사회>라는 책을 내서 주목을 받긴 했지만 실제 판매는 기대와 달리 형편없는 수준이다. 그만큼 사람들이 기후 문제를 심각한 자기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좀 더 쇼크를 주거나 재미요소를 넣거나 하는 수밖에. 조만간 그런 책을 들고 다시 돌아오리라. 폭염의 귀환에 맞춰서.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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