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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쓰는 e메일 서비스는 2004년 만우절에 시작되었다. 베타서비스에는 이미 사용자가 된 사람들의 초대를 받아야 가입할 수 있었다. 당시에 나는 웹메일보다는 메일을 컴퓨터로 끌고 와서 저장하고 쓰는 것을 선호했다. 하지만 천성이 게을러, 정리를 잘하지 않아서 주어진 메일 용량의 압박이 있었고 컴퓨터 저장장치에 받아 둔 메일들이 노트북을 바꾸는 과정에서 오히려 다시 접근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새로 시작하는 e메일 서비스는 정리할 필요 없고 지울 필요도 없다고 광고했다. 필요하면 찾으면 된다. 나는 그 ‘정신’에 따라 그 이후엔 메일을 지우지 않았고, 광고 메일까지 내 계정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 남들은 차고 넘친다는 공짜로 주는 용량을 넘어 매달 돈을 내면서 쓰레기들을 보관하고 있다.

쌓아 둔 것 속에서 필요한 것을 찾아내서 유용하게 쓰는 경우가 제법 많았다. 찾고자 하는 단어를 검색하면 그 단어가 포함된 첨부 파일까지 찾아내기 때문에 오래된 기억들을 끄집어내고 돌아보는 데 도움이 되었다. 14년 쌓인 생각이다 보니, 누구와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고 발전되었는지도 쉽게 보인다. 정보를 찾는 데는 더 유용하다. e메일을 직접 주고받은 경우가 없더라도 단체로 보낸 메일에 포함되어 있으면 검색이 가능하다. e메일 주소가 노출된 단체 메일을 함부로 보내면 안되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찾는 입장에서는 편하다. 하지만 오래도록 쌓아둔 메일들 대부분은 접근 불가능한 덩어리로 존재할 뿐이다. 그때그때 부지런히 e메일을 분류하고 정리하고 지울 것들은 없애버렸으면 또 달리 보이는 것이 있으리라. 어떤 기간에 했던 일들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고, 접근할 수도 없는 심연 속에 방치되는 것들은 줄어들었을 것이다.

여러 날 계속된 지진의 흔들림 속에서 열린 타이베이 국제도서전에 한국관을 운영하면서 잠시짬을 내서 방문했던 고궁박물원. 그곳에서 만난 <사고전서>의 철학은 내가 쓰는 메일 시스템과 정반대이다. 이전의 모든 저작을 모으되 편집을 했다. 청나라 건륭제의 뜻에 따라 만든 이 책들은 아름답다. 240년 전에 만든 이 책은 당시에 구할 수 있었던 것 중 최고였던 귀주산 종이를 특별히 구해 비단실로 꿰매 제본하고 주제에 따라 다른 색의 표지를 입혔다. 목차를 담은 100권은 황제를 상징하는 황색이고 고전은 녹색, 역사는 적색, 철학적인 글들은 청색과 백색, 문집은 회색으로 표지를 만들었다. 수백년 된 색이 전혀 바래지 않고 선명했다. 7만9000권이 넘는 3461개의 저작물을 모아 3만6381권에 담았고 이 책들은 다시 습기와 병충해에 강한 나무로 특별히 짠 상자 6144개에 담겨 있다. 책마다 황제의 보물이라는 인장을 찍어두었는데 명실상부한 보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사고전서>는 수천년에 걸친 저작을 모두 모으려는 시도였지만 어쩔 수 없이 넣고 빼는 편집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책이 만들어질 때, 내용이 한번 걸러진다. 제한된 자원 때문에 수많은 정보와 생각들 중에서 책에 담길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였다. 세대를 이어 남길 수 있는 내용은 고르고 골라야 했다. 검색의 시대인 요즘은 책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거르는 그물이 성기다. 종이도 흔해졌고, 디지털의 세계로 들어가면 용량은 더 늘어난다. 예전 같으면 혼자만 볼 수 있는 기록들이 늘어난다. 그리고 단순한 복사물도 무한히 늘어나고 있다. 모두가 장부를 나누어 갖겠다는 요즘 크게 관심을 끌었던 블록체인 기술은 모두가 똑같은 장부를 나누어가져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똑같은 내용의 데이터가 무수히 많이 만들어진다. 아무리 쉬워졌다고 해도 쓸데없이 똑같은 기록들을 수백만, 수천만개씩 만드는 것은 엄청난 낭비는 아닐까? 분명히 지구가 더 빨리 더워질 것이다.

편집은 의도와 권력이 작용하기 십상이고 현대적 정신은 아마도 편집도 집단지성에 의존하는 것이 아닐까 싶기는 하다. 하지만 빼어난 정신이 인간이 만든 지식 중에서 후세에 남길 것들을 모으고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구닥다리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일까? 검색해서 필요한 부분에 대해 자세히 알 수는 있지만 여전히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지 못한다면 구조와 큰 그림을 놓쳐 미래를 설계하기에는 역부족이 아닐까? DNA의 98%가 단백질을 지시하지 않는 정크라는 사실로 위안을 삼아 본다. 반복으로 가득한, 존재 이유가 불분명한 그 부분에도 무언가 뜻이 있을 것이다. 의미 있는 2%를 전달하기 위해 98%가 필요한 것이라고 애써 생각한다. 하지만 함정은 의미 있는 것이 차지하는 비율이 끝도 없이 작아져 간다는 데 있다.

<주일우 | 이음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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