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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후 회사 일을 마치면 홍대로 향했다. 주 6일 근무제를 시행하던 세월이었다. 회식 날짜가 대부분 금요일 저녁이다 보니 다음날 출근하는 발걸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늦잠과 낮잠으로 이어지는 오후만 있던 일요일이 지나면 다시 종로행 버스에 몸을 실어야 했다. 다행히도 내겐 6일간의 어지러움을 풀어낼 수 있는 공간이 존재했다. 바로 ‘Mythos’였다.

1990년대 중반 무렵의 홍대는 소비지구로서의 정체성이 흐릿하던 동네였다. 살인적인 보증금과 월세도, 관광객의 잦은 발걸음도, 술집의 난립 현상도 없던 고즈넉한 동네였다. 당연히 주택가의 비율이 상점보다 압도적으로 많았고, 아담한 카페가 주택가와 어울려 지냈다. 홍대정문길에는 이런저런 책방이 모여 있었고 젊은 예술가의 작업실 겸 보금자리가 터를 잡고 있었다.

당시 홍대에는 다양한 음반점이 포진 중이었다. 중고음반점 ‘루시 앤 루카’, 재즈전문점 ‘온리 재즈’, 형제가 운영하던 ‘미화당 레코드’, 일렉트로닉음악 전문점 ‘시티 비트’, 지금까지도 홍대에서 영업 중인 ‘메타복스’가 그곳이다. ‘Mythos’는 아트록의 전도사라 불리던 성시완 대표가 운영하던 음반매장이다. 강남에서 ‘시완 레코드뮤지엄’이라는 음반점을 열었다가 1993년 7월에 홍대로 매장을 옮긴 상태였다.

올리버 색스의 책 <뮤지코필리아>에서는 음악을 들으면 색채가 떠오르는 능력을 가진 이들의 사례가 등장한다. 그 시절 ‘Mythos’는 한여름 나뭇잎의 색채를 띠고 있었다. 소개한 장소는 아트록 음반을 주로 취급하던 가게였다. 홍익대학교 정문을 마주 보고 걷다 보면 오른편 골목길에 위치한 음반점. 특이하게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입장하는 구조였다. 슬리퍼로 갈아신고 마룻바닥을 디디는 촉감이 썩 괜찮았다.

매장에 들어서면 왼편에 시완레코드사에서 자체 제작한 수십장의 CD가 걸려 있었다. 계산대를 지나서 오른편으로 들어가면 LP 코너가 위치했다. 다양한 장르의 위탁 음반의 판매도 ‘Mythos’만의 특징이었다. 일본에 이어 한국에서 영국 포크음악이 조금씩 알려지던 때였다. 관련 수입음반이 가장 많았던 이유도 발걸음을 머물게 하는 이유였다.

이곳은 오래 머물러도 심리적 부담이 없는 푸근함이 장점이었다. 매장에서 자연스럽게 만난 사람들과 음악감상동호회를 만들었다. 일요일 오후면 지인이 운영하던 홍대 음악카페에 모여 감상회를 열었다. 이후 FM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여 동호회를 소개하고 제리 가르시아와 앨리슨 크라우스의 음악을 선곡했다. 당시 친구들은 음반제작사, 공연기획사, 중고음반점, 오디오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 중이다.

21세기는 음반업자에게 재앙이나 다름없는 시간이었다. 영원할 것 같던 LP와 CD가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면서 음반시장에 혹한기가 불어 닥친다. 음반매장이 차례로 사라지면서 홍대의 풍경도 점차 퇴색된다. 음반점과 서점 등의 문화적 상징물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소비자본주의를 대표하는 매장이 들어섰다. 당연히 홍대지구를 찾는 방문객의 성향도 변해갔다.

2006년 9월. 경영난으로 ‘Mythos’가 문을 닫는다. 이후 동교동 지역으로 매장을 이전하지만 예전의 활기찬 모습은 되찾을 수 없었다. 일부 음악광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오래된 음반을 찾지 않았다. 언제나 편하게 음악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지만 그만큼의 열정이 바닥 아래로 가라앉았다. 간절한 마음으로 접근하던 음악이 클릭 한 번으로 가동하는 디지털 덩어리로 변했다.

몇년 전부터 홍대에 음반점과 독립서점이 다시 들어서기 시작했다. 아날로그문화의 재림이 반갑지만 일시적인 현상으로 그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지금도 일주일에 두어 번 정도는 ‘Mythos’ 앞을 지나친다. 그곳에서 구입한 음반들. 그곳에서 마주친 인연들. 그곳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오후의 풍경들. 그렇게 홍대 음반점과 얽힌 추억은 푸르스름한 빛깔의 화석으로 남았다.

<이봉호 대중문화평론가 <음란한 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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