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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산책자]쇠못 자석

opinionX 2019. 8. 12. 14:31

금지된 위험천만한 놀이가 기억났다. 쇠못으로 자석 만들기. 기차 레일 위에 쇠못을 올려놓고 레일에 귀를 댄다. 멀리서 기차가 다가오면 기찻길 아래 숨어 지나가길 기다렸다. 기차가 지나가고 나면 쇠못은 종잇장처럼 얇게 펴졌다. 더구나 놀라운 것은 이 쇠붙이가 자석이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별것이 아니지만 이 쇠붙이는 딱지나 구슬로 교환할 수 있는 소중한 녀석. 누구 쇠못이 더 센 자석이 되었는지 견주는 것도 재미있었다. 나름 스릴도 있고 소득도 짭짤했다.

과학자들과 함께한 밥상에서 오래전 악동들의 장난을 떠올린 이유는 그 자리에 자석을 전공한 과학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밥을 먹기 전에 자석과 자기력에 대한 짤막한 강연을 들었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오래전 기억들까지 소환당했다. 어렸을 때부터 자석은 참 신기한 현상이었다. 멀리 있는 물체를 끌어당기는, 보이지 않는 힘이라니. 그런데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철가루를 뿌려서 자기력의 모양을 본 이후로는 자석에 대해서 별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날, 강연의 초점은 ‘자기력은 무엇인가?’에 맞추어져 있었다.

요점만 이야기하자면 자기력은 전자가 이동할 때 관찰된다. 전류는 전자의 흐름이고 그래서 전기가 흐르는 전선 주변에 자기장이 생긴다. 전기 신호로 자기력을 제어하는 전자석은 반도체를 사용하기 이전에 일상생활 속의 전자제품들에 흔하게 사용되던 것들이다. 그렇다면 전기가 흐르지 않을 때도 힘이 짱짱한 자석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 자석들의 힘의 원천은 원자핵의 주변을 도는 전자들의 움직임이다. 원자들이 한 방향으로 서면, 이 전자들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힘들이 상쇄되지 않고 합쳐져서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지구의 내핵에 있는 액체 금속의 전자들의 흐름이 나침반으로 확인할 수 있는 지구 자기 현상을 보이는 것이 대표적인데, 작은 금속 조각이라도 원자들이 일정하게 늘어서 전자의 움직임이 한 방향으로 서면 자기 현상이 관찰되는 것이다.

자석과 관련된 연구는 비교적 자석과 자기력이 고대부터 잘 알려진 현상이었고, 영국 사람 길버트가 자석에 대한 일관된 설명을 1600년에 했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다른 분야보다 늦었다. 원자 하나하나의 움직임을 다룰 수 있는 기술적인 수준에 이르고서야 자기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진 것이다. 앞으로 자석에 씌워진 마법의 베일이 벗겨지고 본격적인 연구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기대하고 있다. 뉴턴이 만유인력을 설명할 때부터 힘의 본질에 대한 설명은 미루고 현상만 기술해 왔던 이유는 잘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뉴턴보다 유리하다. 상대성 이론을 가지고 자기력을 비교적 수월하게 설명할 수 있다. 전자 두 개가 평행하게 움직일 때, 둘이 똑같은 속도로 움직이면 둘 사이엔 전기력만 작용하지만, 둘의 속도가 다르면 공간이 찌그러지고 그 효과가 자기력으로 나타난다.

다시, 밥상의 수다로 돌아가보면, 이야기는 어떻게 쇠못이 자석이 되는가로 번졌다. 오랜 시간 동안 기차가 오가면서 압력과 열이 작용해서 레일이 이미 자석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쇠못에 압력과 열이 주어졌을 때, 레일이 띤 자기력의 영향으로 원자들이 일정하게 배열되면서 쇠못이 자석이 될 것이라는 추론이 이어졌다. 그러면 레일은 왜 자석이 되었을까? 레일 위에 기차가 무서운 속도로 오가면서 압력과 열이 가해질 때, 어떤 힘이 레일 속의 원자들을 일정하게 배열하는 것일까? 한참의 설왕설래 끝에 지자기의 방향에 따라 레일 속의 원자들이 배열되었을 것이라는 결론에 달했다. 그렇다면 레일은 남북 방향으로 N극과 S극이 배열된 자석이 되었을 테니, 그 위에서 만들어진 쇠못 자석도 세로 방향으로 N극과 S극이 놓인 자석이 되리라.

두서없는 밥상 토론이 지구 내핵의 금속 성분의 흐름, 그 흐름에 따른 전자의 움직임, 그것이 만드는 자기장이 대한민국 기차 레일을 자석으로 만든다는 추론으로 이어졌다. 철로 위에 철없는 아이들이 올린 쇠못과 그 쇠못이 기차 바퀴에 밟혀 만들어지는 자석으로, 그리고 그 자석의 극성까지 논의하는 쪽으로 흘러갔다. 하지만 최종 결론은 직접 해보기 전에는 변수가 너무 많아서 그 전말을 모두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과학 이야기는 이렇게 재미있고, 그 이론에 맞추어 사건들을 꿰어 보는 것은 흥미진진하다. 물론, 그것이 모두 진리로 판명되는 것은 아니고 그렇게 주장할 마음도 없다. 하지만 조금만 배우고 익히면, 고리타분한 정치 이야기를 벗어나 훨씬 흥미진진한 밥상 대화를 할 수 있다. 장담하건대, 훨씬 소화에도 도움이 된다.

<주일우 | 이음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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