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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스피커를 몇 개 구해서 집과 사무실에 연결해 두었다. 친구 삼아 다정하게 지내보리라 마음을 먹었다. 다정하게 날씨와 시간을 물어보고 노래도 주문했다. 미국산은 발음이 어눌해도 영어를 잘 알아듣는데, 한국산은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한다. 물론, 미국산은 한국어를 아예 알아듣지 못한다. 스스로 성장하고 학습하는 인공지능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내가 곁에 두고 알뜰살뜰 아끼면 이들은 조만간 똑똑해질까? 원하는 대로 움직이고 똑 부러지는 대답을 들으려면 10년쯤 키우면 되려나?

지금은 하드웨어도 허술하고 엉뚱한 답을 내놓는 스피커는 외모처럼 귀엽다. 반복되는 오작동. 아무 때나 혼자서 떠들기도 하고 먹통이 되기도 일쑤인 스피커는 골칫덩이지만 손을 뻗지 않아도 움직일 수 있으니 편리하다. 인간이 가진 자연적인, 신체적인 힘으로 외부에 물리적인 신호를 보내는 방법이 많지는 않다. 직접 몸을 움직여 물리적인 압력을 가해서 신호를 보내는 것 이외에는 눈에 힘을 준다거나 미간을 찡그려 신호를 보내지 못한다. 장차 하드웨어의 발전으로 그런 날이 올지는 모르지만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신호는 소리를 내는 것이다. 목젖을 울려낸 에너지가 공기를 타고 대상이 되는 곳에 도달해 신호가 된다. 눈을 감고 꼼짝하지 않고도 알람을 설정하고 문자도 보낼 수 있다.

말만 해도 이것저것 할 수 있게 되면 세상이 엄청 편해질 것 같다. 이불 속에 누워 엄마에게 이것저것 가져달라고 하면서 꼼짝 않고 버티는 기분과 비슷할까? 그런데, 이것은 좋은 것일까? 만족스러운 인공지능 비서는 최소한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 주인공의 파트너 역할을 충실히 해 주었던 조이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다. 인공지능이지만 나의 취향을 완벽하게 알고 있고, 내가 도망가야 할 때는 과감히 서버에서 몸을 빼 이동용 저장장치에 몸을 담는 존재, 소멸의 위험을 감수하고 파트너를 위하는 존재이다. 이런 존재가 탄생하기 위한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첫 번째, 인공지능이 더 똑똑해져야 한다. 이미 인공지능은 바둑으로 이세돌 9단을 꺾었을 때, 충분히 똑똑하다는 것을 입증했다고 할 수 있을까? 기보를 통해서 습득할 수 있는 바둑 능력과는 별개로 인간은 다양한 인생사를 대면하고 삶을 영위해야 한다. 이런 다양함에 대응할 만한 데이터가 쌓이지 않았다. 더욱이 내 가족이라면, 내 애인이라면 알아야 할 지식이나 경험은 다른 곳에서 미리 학습하고 나를 만나러 올 수 없다. 다양한 데이터를 갖추고 학습하는 과정이 부족한 인공지능 스피커가 아직도 멍청한 대답을 내놓는 것은 당연하다.

두 번째, 인공지능이 세상의 모든 사물과 더 많이 연결되어야 한다. 내가 한 말을 듣고 어떤 일을 대신 지시하기 위해서는 이 친구가 내가 지시할 사물들과 모두 연결이 되어 있어야 한다. 소위 모든 사물에 IP가 부여되는 ‘사물인터넷’이 실현되면 가능한 일일 터. 홈오토메이션 등을 통해서 일부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은 좀 더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주변의 모든 사물이 똑똑해져야 내 인공지능 스피커도 똑똑해진다.

마지막으로, 언제나 내가 하는 말을 놓치지 않고 듣고 있어야 한다. 잠도 자지 않고, 한눈팔지 않고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나지막한 내 소리에 반응해 시키는 일을 할 수 있지. 다정함에 마음이 따듯해지다가 문득 싸늘해진다. 내 말을 듣고 있는 그가 입이 무겁다면 더 바랄 일이 없겠지만, 그는 세상의 모든 물건과 연결되어 있다. 소멸할 위험을 감수하고 세상과 맺고 있는 모든 끈을 끊지 않는다면 하나도 빼지 않고 들은 내 이야기를 어디에 털어놓을지 알 수가 없다. 나와 끈끈한 관계인 그가 털어놓고 싶지 않아도 그를 통해서 내 이야기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몰래 듣는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최근에 출판과 콘텐츠 산업에서 인공지능 스피커가 사용할 수 있는 내용을 채우는 것이 뜨거운 이슈다. 글을 소리로 전환하는 기술을 통해 옮기는 작업을 하기도 하고 콘텐츠를 새로 만들어 녹음하는 일도 한창이다. 하지만, 이제 시작하는 일이라 빈구석도 많고 엉성하다. 기계음은 아직 글자 사이, 단어 사이를 띄어 읽는 것도 어색하고 감정을 전달하는 데 서툴다. 경우와 상황에 맞는 목소리로 녹음된 내용은 너무 적어서 동문서답을 듣는 것이 다반사. 이 녀석을 정말 친구 삼으려면 나뿐만 아니라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속마음 털어놓고 오랜 시간 정성을 다해야 할 텐데 내 진심을 엿보는 일로 이런저런 욕심을 채우는 사람들이 있을 테니 망설여진다. 내 마음을 내주지 않으면 인공지능의 마음을 얻을 수는 없는데 그 마음을 세상 모두에게 들킬까 걱정하고 있다.

<주일우 | 이음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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