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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산책자]호모 쓰레기쿠스

opinionX 2018. 7. 23. 15:03

향유고래는 진화의 역사가 만들어낸 가장 장엄한 생물이다. 지난 2월 스페인 남부 해안에 죽은 향유고래가 떠밀려왔다. 죽은 고래의 몸속에는 29㎏의 플라스틱이 들어 있었다.

중국은 전 세계 폐플라스틱과 폐비닐의 절반 이상을 수입하는 나라다. 플라스틱 재처리로 먹고사는 노동자 가족을 다룬 영화 <플라스틱 차이나>로 인해 중국은 폐기물 수입금지 조치를 내렸고, 지난 4월 한국에서는 쓰레기 분리수거 대란이 일어났다.

카리브해 도미니카공화국의 아름다운 산토도밍고 해안에 각종 플라스틱 쓰레기가 해일처럼 밀려오기 시작했다. 500명의 인력이 하루 60t씩을 수거하고 있지만 또 그만큼이 밀려온다. 유엔환경계획에 따르면 매년 800만t의 플라스틱이 전 세계 바다에 버려진다고 한다. 이것은 평균 4t 정도인 코끼리 200만마리에 해당하는 무게다.

유엔식량농업기구는 전 세계 어획량의 35%가 식탁에 오르지도 못하고 버려진다고 보고하고 있다. 크기가 작거나, 잡는 과정에서 죽어 올라오거나, 잡으려는 어종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태평양 남동부나 지중해에서는 종들의 3분의 2가 남획되고 있다고 한다.

고양시의 어느 집 주부는 쓰레기 종량제 봉투를 기회 있을 때마다 사 모은다. 8월부터 가격이 25%가량 오르기 때문이다. 가게마다 종량제 봉투가 품귀다. 이렇게 알뜰하니 남편은 쓰레기 배출에도 민감할 거라 생각하여 말리지 않는다. 아니, 남편부터 쓰레기 배출을 줄이기로 했다.

자연에서 쓰레기를 남기는 존재는 오직 인간뿐이다. 동물은 꼭 필요한 만큼만 자연을 이용한다. 필요한 만큼만 먹고 둥지를 짓고 자취를 남긴다. 동물들도 남기는 것이 있긴 하지만 자연이 분해 처리할 정도를 넘지 않으며, 그러므로 쓰레기가 아니다.

하지만 인간은 자연에서 필요한 성분만 뽑아내고 나머지는 버린다. 필요한 용도만 분리, 가공, 압축하여 취한 다음에 나머지는 쓰레기라고 부른다. 인간은 자신의 몸과 정신마저도 같은 방식으로 취급한다. 병과 고통은 인간에게서 떼어내야 할 그 무엇이다. 무익한 상상이나 병든 생각도 치료해야 할 정신상태다. 인간 집단도 그렇게 나뉘어져 있다. 학벌이나 돈, 집안이 좋아 결과적으로 가진 게 많은 인간은 존중받지만 이 중 어느 것도 없어 사회 밑바닥에 놓인 인간은 쓸모없는 인간, 즉 쓰레기처럼 취급하는 게 이 사회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쓰레기가 되는 삶>에서 기술 진보와 경제 성장으로 전 지구적 자본주의가 승리를 거둠에 따라 더 많은 쓰레기가 생겨나고 있다고 진단한다. 자본주의의 무제한적 생산과 이윤 추구의 동기가 소비자들로 하여금 더 빨리 상품을 소비하고, 끊임없이 더 새로운 것으로 바꾸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상품은 지금 버려지기 위해 생산되는 중이다. 현대 자본주의가 호모 에코노미쿠스(경제적 인간)와 호모 콘수멘스(소비하는 인간)를 바람직한 인간 유형으로 선전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인간이 쓰레기를 만드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생산과 소비가 사회의 핵심 기능이 된 나머지, 거기서 아무런 역할도 담당하지 못하는 사람은 과잉, 잉여, 초과된 인구로 취급받는다. “쓰레기 수거는 그 자신 폐기될 인간들, 소비주의 세계의 바깥에 사는 사람들에게 맡겨진다.”

페트병이나 플라스틱 잔을 쓰지 않으려고 휴대용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 에코백을 꼭 가지고 나와 장을 보는 사람들, 차를 세워두고 웬만한 거리는 걷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내 친구는 아내와 딸들이 저마다 사은품으로 텀블러를 받아오는 바람에 집 안에 ‘플라스틱’ 텀블러가 몇 개인지 모른다고 한탄한다. 에코백 안에는 비닐로 포장한 상품이 한가득이다. 우리는 빠져나올 수가 없다. 하지만 생산과 소비를 부채질하여 배를 불리고 있는 기업들은 지금 무엇을 하는가? 그들이 꼼짝하지 않는 한 소비자들이 아무리 발버둥쳐봐야 양심의 무익한 표현에 그칠 뿐이다.

마르크스는 말했다. “(이들 시장경제주의자는) 수요가 고안된 것이고 소비 없이는 생산도 없다는 사실을 모른다. 경쟁의 결과, 생산이 더욱 확대되고 사치스러워지기만 했다는 사실을 모른다. 물건의 가치는 사용에 따라서 결정되지만 그 사용은 기분과 유행에 따라서 결정된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들은 ‘쓸모 있는 것들’만 생산되기를 바라지만, 쓸모 있는 물건을 너무 많이 생산하면 쓸모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진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낭비와 절약, 사치와 궁핍, 부와 가난은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

<안희곤 | 사월의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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