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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속담과 같이 많이 쓰이는 것이 ‘가을볕(밭)에는 딸을 내보내고 봄볕(밭)에는 며느리 내보낸다’입니다. 이미 결혼한 며느리는 흉하게 타든 말든 괜찮지만 장차 시집갈 자기 딸은 얼굴 곱게 타야 하니까요. 이렇듯 같은 딸이라도 자기 딸을 더 챙기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어디 안 갑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배 썩은 것은 딸 주고 밤 썩은 것은 며느리 준다’가 됩니다. 아들 주느라 온전한 배는 못 줘도 그나마 썩은 부위 도려내면 먹어볼 거 많은 건 딸 줍니다. 하지만 밤 썩은 건 아휴, 먹잘 게 없습니다. 이런 입 챙김에서 손 챙김으로 넘어가면 ‘죽 설거지는 딸 주고 비빔 설거지는 며느리 준다’로, 수고로움에도 차별이 공공연하게 드러납니다.

식구(食口)란 한솥밥 먹는 사이를 말합니다. 며느리도 식구일까요? 아닌 듯합니다. 우리 집안은 며느리도 한 식구라고 흐뭇하게 화목을 내비치는 시아버지, 너는 며느리 안 같고 딸 같다며 오히려 며느리 시집살이 힘들다 농담하는 시어머니, 우리 어머니는 절대 그럴 분 아니시라고 장담하는 남편 사이에서 며느리는 ‘그저 웃지요’ 표정 짓고 인터넷 게시판과 소셜미디어로 향합니다. 대나무숲에는 이미 수많은 익명의 며느리들이 모여 ‘시월드’를 하해(河海)와 같이 성토하고 있습니다. ‘시’자 들어가는 건 시금치도 싫다며 ‘시’로 시작되는 이들에게 받은 상처와 설움에 신물을 올리고 눈물을 흘립니다.

현명치 못한 사람은 자신은 모르고 며느리만 알게끔 제 자식을 아낍니다. 때론 ‘여름 불은 며느리가 때게 하고 겨울 불은 딸이 때게 한다’처럼 노골적으로 편애하기도 합니다. 연일 폭염입니다. 가스불 앞 땀 줄줄이 끔찍해 남편 찔러 외식하자 하라니, 집밥 놔두고 무슨 외식이냐고 아가, 어서 국솥에 물 올리랍니다. 자기 아들 돈은 아깝고 남의 아까운 딸 불 고생은 미처 모릅니다. ‘시’자 중심의 시댁, ‘시’가 관여하는 결혼관계에서 남의 딸은 식모지 식구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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