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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귀여미’들을 젖 먹여 키우던 엄마 진돗개에게 물린 적이 있다. 인형처럼 생긴 강아지를 한 마리 꼬드겨설랑 툇마루로 가던 차였는데, 엄마개가 나를 뒤에서 악 물었다. 겉으론 새하얀 천사 옷을 걸치고 선량한 표정을 짓던 흰둥이 백구. 개주인 할머니가 이빨자국이 난 발목에다가 된장을 발라주었다. 집에 왔더니 아버지는 깜짝 놀라며 소독용 알코올로 씻어내시곤 “개를 된장 발라야지 너를 된장 발랐구나”그러셨다. 며칠 발목이 퉁퉁 부어 고생하였다. 이후 진돗개라면 삼십육계 도망부터 치게 되었다. ‘전설의 고향’ 전문 출연 귀신처럼 새하얀 소복을 걸친 백구 진돗개. 그때 트라우마가 남았는지 어른이 되어서도 덥석 안아줄 용기가 나지 않는다.
법망을 용케 피해 다니는 높으신 양반들의 삼십육계. 무슨 조폭 영화 속의 장면들 같아. “그 인간 아직도 감옥에 안 갔대?” “빵에 들어가도 존 대접 받다가 금방 휠체어 타고 또 나오겄쟁.” 허탈한 표정으로 클클. 고작 나는 개를 피해 도망 다니는 딱하고 못난 신세. 이러려고 만물의 영장으로 태어났는지 자괴감이 드는구나.
주사가 심한 취객도 개나 마찬가지다. 웃자고 하는 말을 죽자고 덤벼드는 누군가 꼭 술자리에 있다. 하나 마나 한 말씨름 끝에 쌍시옷 욕까지 섞이는 순간은 하루를 망치는 대단원의 막. 두말없이 자리를 피해 도망쳐야 한다. 화장실과 택시는 그대와 나의 구세주. 이제는 나도 삼십육계 나이가 되어 낯설고 험상궂은 얼굴들 죽치고 앉아 있으면 후다닥 내빼고부터 본다. 특히 누군가를 지키겠다고 나선 호위무사들은 가장 드세고 무섭다. 무엇인가를 지켜야지 누군가를 지킨다는 건 어리석은 착각이요 맹신이다. 정치도 종교도 사람에 대한 맹신은 적폐의 온상이다. 산천을 두루 돌며 삽십육계를 배우고, 발목이 아닌 모가지를 물 ‘때’를 기다리고 준비하는 건 비겁함과 사뭇 다른 태도다. 수많은 낙향 선비들, 유배자, 촌장들과 촌뜨기, 여행자들이 삼십육계로 약을 올리며 개들의 힘을 뺀 까닭에 그나마 역사가 굽이굽이 이 자리에까지 고이 흘러왔다. 죽기 살기로 맞대결, 정통일계로만 살다보면 매우 피곤하고 팍팍한 세상에 갇히게끔 되어 있다.
<임의진 목사·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