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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다다다 탈곡기 소리에 벌떡 깼다. 평야엔 농부들과 볏섬, 참새 떼가 일찍부터 내려앉았고 달과 별은 어디로 갔는지 사라지고 없어라. 그 둥글고 크던 얼굴. “모두가 낮잠을 자는 이유구려. 저 둥근 달.” 언젠가 읽었던 하이쿠 한 소절. 풀벌레 소리에 잠 못 들고 환한 달빛에 잠 설치고 부지런한 농부들 땜시 아침잠도 빼앗겼다. 낮잠으로 보충하면 되지 뭐. 꼭 밤에만 자라는 법도 없다. 수도원 규칙이 암만 엄해도 성덕이 깊은 수도원장은 “사람이 먼저다!” 팁을 살짝 뿌린다. “규칙은 사랑 앞에서 허물어뜨리라고 있는 거라네. 그걸 잊어버리면 자네들은 수도원에 있는 기계밖에 더 되겠어. 사람을 먼저 생각하게. 그 다음에 규칙이네.” 여행과 사랑과 잠의 세월. 그리고 기나긴 단잠, 사후의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다.
감옥에 계신 그분이 언젠가 잠이 보약이라고 했다지. 보약 맞다. 하지만 건강한 삶을 산 뒤의 단잠이어야 맞다. 북미 원주민들은 ‘자연 모든 곳에 있다’라는 뜻의 ‘음페손’을 약을 칭하는 낱말로 썼다. 그중에 최고는 ‘에그트지 음페손’. 바깥 땅 위에서 약을 구함은 물론이거니와 우리 마음속에 있는 혼돈과 불안, 슬픈 억눌림, 옹졸한 생각들을 몰아내야만 진정한 건강을 누릴 수 있다는 거다.
약을 한 봉다리씩 입에 물고 사시는 동네 할머니들. 다리가 풀려 그만 넘어져서 다치신 분들도 간간이 보인다. 하체를 튼튼하게 다지려면 자주 걸어야 한다. 누워 버릇하면 영원히 눕는 수가 있다. 잠은 가장 나중에, 마지막 순서다. 눕기 전에 명약을 구해다 달여 먹고, 세상에 두루 약이 되는 삶을 또한 살아야 한다.
촛불 시민혁명 1주년. 이모저모 국민들은 마음의 상처, 내상이 크고도 깊다. 적폐 청산이야말로 가장 큰 치유이고 명약이 아니겠는가. 축구대표든 태극기 집회 어르신들이든 태극전사 말고는 다시는 이전의 시대,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앞으로 난 길. 우리가 모두 살길. 사람이 먼저인 세상. 모두가 건강한 세상을 위해서는 에그트지 음페손을 어서 손에 쥐어야 한다.
<임의진 목사·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