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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9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5월3~4일, 북한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은 중국이 ‘조·중관계의 붉은 선’을 넘고 있다면서 “조·중관계가 아무리 소중하다 해도 목숨과도 같은 핵과 바꾸지는 않겠다”고 했다.
북한은 ‘배신’이란 말까지 써가면서 최근 중국의 대북 행동에 반발하고 있다. 이는 중국의 대북 압박이 상당히 강해진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지난 4월6~7일 미·중 정상회담 이후 나타나고 있다.
중국의 대북 경제제재가 높아지고 있던 4월26일, 미국 틸러슨 국무부 장관, 매티스 국방부 장관, 코츠 국가정보국장이 합동으로 트럼프 정부의 대북정책을 발표했다. 핵심은 ‘최대의 압박과 개입’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도 불구하고 하루 뒤인 29일, CBS 인터뷰에서 김정은을 ‘꽤 영리한 녀석’이라고 평가하면서 ‘상황이 조성되면 그와 영광스럽게 만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5월4일 미국 하원은 강력한 대북제재법을 통과시켰다. 결국 트럼프의 북핵정책은 중국이 먼저 북한에 압박을 가하면, 이후 미국이 직접 나서서 북한을 대화테이블로 끌어내겠다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미·중 정상회담 후 중·북관계를 보면, 트럼프와 시진핑이 ‘무역불균형 해소 100일 계획’에 합의하는 과정에서 북핵 문제가 협상 칩으로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즉 중국이 대북 압박을 강화해서 김정은의 입장변화를 끌어내면, 이후 미국은 대중 경제압박을 줄여가면서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낸다는 암묵의 양해가 이루어진 것 같다. 오바마는 레버리지도 쓰지 않고 북핵 관련 중국 역할만 주문했기 때문에 중국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엔 중국이 움직이고 있다. 중국의 경제를 걸고 들어오는 트럼프의 사업가적 거래방식이 외교에도 통한 것이다. 그럼 중국이 대북 경제압박을 가해서 트럼프가 김정은을 ‘영광스럽게’ 만날 수 있는 상황 변화가 일어나면 우리에겐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것이 내일 출범하는 새 정부 외교안보팀의 최우선 과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3월10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후, 한·미 간 사드 배치가 발빠르게 진행되는 시기에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이 미국을 방문했다. 3월18일 미·중 외교장관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왕이 부장은 “진정한 담판의 진전을 이뤄야 한다”면서 “중·미·북 3자 회담에 이어 6자회담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틸러슨 장관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함께 노력하자”고 화답했다. 왕이가 3자회담을 제안한 것도 문제지만 틸러슨이 화답한 것도 우리로서는 경각심을 가져야 할 일이다. 새 정부가 민첩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임기 초부터 북핵 문제 관련해서 ‘코리아 패싱’(외교 왕따)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내일 출범할 새 정부로서는 어차피 사드 문제를 놓고 국민적 공론화 과정을 거치면서 미국과 사실상의 재협상을 해야 한다. 그리고 미국과의 협의 계획을 명분으로 중국에 사드 보복 중지부터 요구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대 미·중 외교적 입지를 넓혀가면서 3자회담이 아닌 4자회담을 수정 제안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6자회담 직행을 선도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하려면 남북관계부터 복원해야 한다. 1990년대 중반 남북관계가 나빴을 때 이미 우리는 ‘통미봉남’을 경험하지 않았던가. 이걸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새 정부가 남북관계를 복원하려 하면 보수진영은 ‘북핵 문제 미해결’ ‘유엔제재결의안 위반’ 등의 구실로 반대할 것이다. 그러나 새 정부는 철학과 소신을 가지고 국민을 설득하고, 자신의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트럼프는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김정은과 만나도 되고, 한국은 북핵 문제 해결 전엔 어떤 남북관계도 개선할 수 없다는 건 불공평하다. 금강산 관광비와 개성공단 인건비가 유엔제재안이 금하는 ‘벌크 캐시’에 해당하는가에 대해선 이미 2014년 박근혜 정부도 ‘해당없다’고 해석한 바 있다. 따라서 새 정부는 책임감을 가지고 소신있게 대북정책을 펴나가야 한다. 그러면 ‘코리아 패싱’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황재옥 | 평화협력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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